한국수력원자력과 원자력문화재단이 원자력발전소 안전 홍보를 위해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렸던 자료 175건을 삭제하거나 비공개로 전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기관들은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사 재개 여부를 결정할 공론화 논의 기간에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일시적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정부는 ‘에너지 전환 정보센터’(www.etrans.go.kr) 홈페이지를 새로 개설해 탈(脫)원전 및 신재생에너지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원전 안전과 관련된 자료는 숨기면서 원전 위험성을 강조하는 자료만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쪽에만 유리한 일방적 정보 제공으로 ‘정보 비대칭’이 발생해 국민들이 원전의 장단점에 대해 균형감 있는 판단을 내리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 원전 장점 알리는 자료 잇따라 삭제
11일 곽대훈 자유한국당 의원실이 해당 기관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수원과 원자력문화재단은 원전의 장점과 안전성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었던 자료 175건을 7, 8월에 무더기로 삭제하거나 비공개로 처리했다. 한수원은 8월 4일과 7일에 151건의 자료를 지웠고, 원자력문화재단은 24건을 비공개로 전환해 일반인들이 홈페이지에서 자료를 열람할 수 없게 했다. 두 기관은 원전의 장점과 안전성을 홍보하기 위해 홈페이지와 블로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활용해 꾸준히 홍보 활동을 해왔다.
한수원이 삭제한 자료에는 ‘지진에도 안전한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 등 원전의 안전성을 다룬 내용들이 담겨 있다. 이 자료들에는 원전이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고, 발전 단가가 저렴해 장점이 많다는 내용이 실렸다. 해외에서 원전 건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다룬 자료, 지난해 12월 개봉한 원전 재난영화 ‘판도라’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블로그 글 등도 삭제됐다. 원자력문화재단은 △원전이 신재생에너지에 비해 갖는 장점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불러온 오해 등에 대한 글을 비공개 처리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신고리 5, 6호기 공론조사가 진행 중이라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글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원자력문화재단 측은 “현재 홈페이지 개편 작업이 진행 중이다. 사실 확인이 추가로 필요한 일부 게시물을 비공개 처리했다”고 해명했다. 두 기관 모두 정부의 공식 지시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 글들은 공식 행정문서가 아니라 게시판 관리자가 임의로 처리해도 된다는 게 해당 기관의 설명이다.
○ “탈원전만 홍보하는 정부, 균형 찾아야”
일각에서는 정부가 탈원전 정책 홍보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기관들이 눈치 보기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수원과 원자력문화재단이 과거에 만든 자료들이 원전 건설을 찬성하는 측의 근거 자료로 쓰이는 것이 부담스러웠다는 것이다. 그동안 원전 안전성 홍보가 주된 업무였던 원자력문화재단은 최근 원자력협의회를 탈퇴하면서 사실상 탈원전 홍보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곽 의원은 “민감한 시점에 두 기관이 원전의 장점을 소개한 자료를 일괄 삭제한 건 순수한 의도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6일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높이겠다며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이 홈페이지에는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면 원전은 비싼 에너지이며,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해도 전기료 인상은 미미할 것이라는 내용 등이 담겼다. 탈원전 찬성 측의 주장을 사실상 그대로 옮겨놓은 것들이다.
전문가들은 공론화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중립을 지키고 원전의 장단점을 공평하게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국민들이 원전의 위험성과 더불어 원전의 장점도 알아야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며 “원전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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