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성적표 받아보니… 상위권, 영어B형서 등급하락 폭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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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점수 하락… 1등급 규모도 줄어, 일부 수험생 “입시포기… 재수하겠다”
상당수 수시 최저학력기준에 미달… 학교-학원가 “진학지도 막막” 한숨

담임교사가 교실 문을 열자 순간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어떤 학생은 불안한 듯 다리를 떨었다. 크게 심호흡을 하는 학생도 보였다.

27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A고교의 3학년 교실.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를 받아든 학생 10명 중 7, 8명은 표정이 일그러졌다. 성적표에 얼굴을 파묻은 채 긴 한숨을 내쉬거나 허탈하게 쓴웃음만 짓는 학생도 있었다. 한 학생은 갑자기 걸상 위로 올라가 “다 같이 재수나 하자”고 외쳤다.

담임교사들도 ‘위로 아닌 위로’를 하느라 힘들기는 마찬가지. 김남윤 교사는 “생각보다 등급을 못 받아 실망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말로는 상심하지 말라 했지만 학생들 눈 마주치기도 괜히 미안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영어 B형은 학생들의 고개를 떨어뜨리게 한 원흉으로 지목됐다. 선택형으로 치러진 올해 수능에서 어려운 영어 B형의 실제 난도는 상당히 높았지만 상위권 수험생끼리 경쟁하다보니 오히려 표준점수는 지난해보다 5점이나 떨어졌다. 평균 점수가 올랐다는 뜻이다. 게다가 1등급을 받는 절대 규모까지 줄어든 탓에 기대보다 못한 등급을 받은 학생들이 속출했다.

이 학교 한모 군은 “영어에서 등급을 까먹었다. 성적표 받은 친구들도 ‘이게 뭐지’란 표정이 많았다”고 했다. 서울 숙명여고 이모 양은 “A, B형으로 나눈 취지가 A형은 쉽게, B형은 예년대로 낸다는 방침 아니었나. 영어 B형이 너무 어려워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는데 성적표를 받고 보니 또 한번 얻어맞은 느낌”이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전반적으론 이번 입시가 어떤 유형을 선택해 어디에 지원했는지에 따라 당락이 좌우되는 의외성이 너무 강해 ‘로또 수능’이란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

보통 성적표가 배부되면 학교, 학원가 등에선 본격적인 진학 지도에 들어간다. 하지만 올해는 유형에 따른 변수가 워낙 많아 상담기준 잡기조차 어려운 상황. 서울 서초구 B고교의 진학부장은 “오전부터 수험생과 학부모 문의가 폭주하는데 어떻게 답변해줄지 막막하다. 지난해 진학 자료를 참고할 수 없어 더 힘들다”고 했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로또 수능이 ‘깜깜이 수능’을 불렀다. 당장 상당수 학생들이 예상 밖으로 수시모집 최저학력기준에 미달하면서 이들의 지원전략을 짜주기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중상위권 수험생들을 중심으로는 지원 경향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일단 수능이 전반적으로 어려워 변별력을 갖추면서 소신 지원하려는 학생들이 늘었다. 내년 수능부터 영어 선택형이 사라지기 때문에 재수해도 좋다는 생각에 배짱 지원하겠다는 학생들까지 있다. 지난해 수능 직후 선택형으로 바뀐다는 이유로 하향지원한 학생들이 늘었던 것과는 정반대 상황이다.

반면 안정지원 경향도 뚜렷했다. 오종운 이투스청솔 평가이사는 “올해는 입시 자체가 예측이 쉽지 않아 자기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그러다보니 나만 시험을 못 봤다는 불안감에 하향 지원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입시전문가들은 우선 예년과 비교하지 말고 올해 상황을 중심으로 전략을 짜라고 조언했다. 김명찬 종로학원 평가이사는 “수시든, 정시든 선택형이란 특수성에 맞춰 원점에서 바라보고 기준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불안하더라도 최소한 예년보다 2배 이상 많은 시간과 노력을 전략 수립에 투자해 원하는 대학을 공략해야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이예은 인턴기자 이화여대 역사교육과 졸업
#수능성적표#상위권#등급하락#표준점수#입시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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