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검증 건성건성… 전문가 들러리 세우는 시스템 바꿔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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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출제 이대로는 안된다]<下> ‘사고 줄이기’ 장단기 해법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오류가 반복되면서 출제 및 검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지만 수능이라는 거대한 공룡을 바꾸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검증을 강화해서 오류를 잡는 방안을 서두르되, 중장기적으로 근본적인 수능 개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능은 통합적인 사고력 평가를 목표로 학력고사를 대체했지만 20년 넘게 이어지면서 문제풀이 기술 테스트로 변질됐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특히 고교 현장에서는 수능 과목과 점수 체계가 수시로 바뀌고, EBS 연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탓에 ‘수능이 고교 교육을 망친다’는 비판까지 쏟아졌다. 수능이 한계치에 도달했다는 진단이 나오면서 수능을 고교 졸업이나 대학 입학의 자격고사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 검증 강화, EBS 축소가 급선무


지난해 수능 세계지리 문제 오류가 1년 넘게 장기화된 가장 큰 이유는 출제-검증-이의신청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행 대입 일정상 촉박한 기한 내에 출제를 마치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검증과 사후 이의신청 심사를 매우 엄격하게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과정이 학계에서 인맥으로 연결된 이들 사이에 이뤄진다는 점이다. 특히 이의심사 과정에서는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정무적인 판단을 내린 뒤 특정 학회 등 전문가를 들러리로 전락시키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세계지리의 경우 평가원이 학회 두 곳에 의견을 물은 지 불과 하루 만에 해당 학회들이 회원 의견도 수렴하지 않고 ‘이상이 없다’는 회신을 보냈다.

이에 따라 출제와 검증을 완전히 분리하는 이원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그러나 국어 영어 수학 등과 달리 전문가 집단 규모가 작은 선택과목 분야에서는 이원화된 인력 풀을 구성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현실적인 한계다. 이 때문에 일부 교사와 교수들은 최근 1, 2년 이내에 수능에서 최상위권 성적을 냈던 수험생들을 검증 절차에 참여시키자는 대안까지 내놓고 있다. 수험생 눈높이에서 오류를 잡아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정부에서 수능 사교육을 줄이겠다며 EBS 연계율을 70%까지 끌어올린 것도 바로잡아야 할 대상이다. 고3 교실에서 교과서가 사라지고 EBS 교재만 달달 외우는 부작용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한국교육정책교사연대 대표인 이성권 서울 대진고 교사는 “교육부가 수능의 EBS 연계 정책을 채택한 것은 일방적인 지식주입형, 문제풀이형 교육을 더욱 굳어지게 만든 비교육적인 조치”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EBS 교재는 교과서에 비해 단기간에 만들어지고 검증 절차도 간단해서 오류가 많을 수밖에 없다. 수능 출제 위원들이 합숙소에 EBS 교재를 들고 들어가 출제를 하는 현실에서 EBS 오류는 이번처럼 수능 사고로 직결되는 결과를 낳는다.

○ 자격고사 전환 논의 시작해야

단기적인 처방보다 중요한 것은 수능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선이다.

대입 경쟁이 어느 나라보다 극심한 현실에서 국가가 주관하는 상대평가 시험이 입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다 보니 각종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 수 없다.

수능과 같은 국가 단위의 대입 시험이 개별 대학 입시를 좌우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대부분 국가 단위의 시험은 고교 졸업이나 대학 입학의 자격고사로 쓰인다. 고교 졸업고사 겸 대입고사인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독일의 아비투어가 대표적이다. 이 시험들은 일정 점수를 기점으로 합격, 불합격을 가르기 때문에 수능처럼 피 말리는 경쟁을 유발하지 않는다.

반면 우리 수능은 9등급 상대평가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일정 점수만 넘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수험생 집단 간에 무한 경쟁을 해야 한다. 대학들은 3불정책(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금지)에 따라 본고사를 실시할 수 없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내신에 비해 공신력이 있는 수능의 반영 비중을 높게 책정한다. 수능의 영향력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교육부는 이미 10년 전에 수능 자격고사화를 추진한 바 있다. 2004년 2월 당시 교육인적자원부는 ‘공교육 정상화를 통한 사교육 경감대책’을 발표하면서 2008학년도 수능부터 완전 자격고사화하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수능을 대체할 만한 대안이 없고, 대학별 본고사를 부활시킬 수 있다는 우려 등이 뒤따르면서 이 정책은 없던 일이 됐다.

이후 10년간 수능의 출제 오류는 더 빈번해졌고, 문제은행방식을 채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출 문제를 피해 더이상 새로운 문제를 내는 것도 한계에 봉착했다. 이 시점에서 수능의 자격고사화를 다시 추진하려면 학교생활기록부, 수능, 대학별 고사라는 3대 입시 요소를 총체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입시에서 수능의 비중을 줄이기 위해서는 학생부 평가 방식 및 대학별 고사의 허용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가 중요한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김희균 foryou@donga.com·전주영·임현석 기자
#수능#오류#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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