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한 해 두 문항 오류’ 불명예…“한국사 복수정답·물리Ⅱ는 정답없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5일 15시 58분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수능 역사상 두 번째 '한 해 두 문항 오류'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5일 "2017학년도 수능에서 한국사 14번은 복수 정답, 과학탐구 물리Ⅱ 9번은 '정답 없음'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사 14번은 기존 공표된 정답 1번 외 5번도 정답으로 확정됐고, 물리Ⅱ 9번은 모두 정답으로 인정받는다. 한국사 14번은 약 13만5000명이 추가로 복수 정답을 인정받을 전망이다.

2014, 2015학년도 연속 출제 오류로 평가원은 지난해부터 수능 검토위원장 자리까지 신설했지만 또 문제가 생겼다. 더욱이 한국사는 올해부터 필수로 지정된 영역이라 큰 오점을 남겼다. 김영수 평가원장은 이날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5년 3월 수능 출제오류 개선방안을 마련해 출제·검토 시스템을 개선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출제오류가 발생했다"며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 두 문항 오류 또 오명

평가원에 따르면 수능 직후 21일 오후 6시까지 이의신청은 661건이 제기됐다. 중복 등을 제외한 심사 대상은 490건, 124개 문항이었다. 평가원은 2문항을 제외한 나머지는 이상이 없다고 판정했다.

한국사 14번은 대한매일신보에 대한 옳은 설명을 찾는 문제다. 평가원은 정답을 1번 '국채보상운동을 지원했다'를 제시했지만, 5번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논한 시일야방성대곡을 게재했다'도 정답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시일야방성대곡은 1905년 11월 20일 황성신문에 처음 게재됐지만, 11월 27일 대한매일신보에도 영어로 번역 게재됐기 때문이다. 평가원은 "한국사연구회와 역사교육연구회로부터 '5번 지문에 최초라는 진술이 없으니 정답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답을 받았다"고 밝혔다.

물리Ⅱ 9번은 로런츠 힘을 이용한 속도선택기의 원리를 이해했는지 묻는 문제였다. 정답은 선택지 중 ㄱ, ㄷ으로 구성된 3번이었지만 평가원은 한국물리학회로부터 "문항에서 자기장의 방향 조건을 제시하지 않아 ㄱ의 진위를 판단할 수 없다"는 의견을 들었다. 평가원은 "선택지 중 ㄷ만 나온 게 없어 모두 정답으로 인정한다"며 "해당 문제는 이의 신청이 1건 제기됐지만 이의신청 모니터링단에서 검토가 필요하다고 해 자문을 구했다"고 설명했다.

종로학원하늘교육에 따르면 한국사 14번의 복수 정답 인정으로 13만5000만 명이 추가로 정답 처리될 것으로 추정된다. EBS의 가채점 결과 5번으로 마킹한 수험생이 전체 응시생(60만5987명)의 22.3%여서다. 대부분 주요 대학에서 한국사는 인문계 3등급, 자연계 4등급 이내면 감점하지 않아 이번 조치로 2점이 올라가도 당락에는 영향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물리Ⅱ 9번은 최초 정답자가 67.7%(2388명)에 달했던 만큼 모두 정답 처리되며 표준점수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물리Ⅱ는 서울대 등 최상위권이 주로 응시하므로 피해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 원장은 "교육부와 협의해 수능 출제 검토시스템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개선 사항을 마련해 내년 6월 모의평가 때부터 적용하겠다"며 "채점과 성적 통보 등 급한 일부터 마무리하고 책임 소재 문제를 다루겠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출제 오류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교육부가 2014년 12월 구성했던 수능개선위원회 출신 김종우 양재고 교사는 "지난해 검토위원장 자리까지 신설했는데 오류를 못 잡았다는 건 평가원이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뜻"이라며 "한국사가 당락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으니 대충 출제해도 된다고 부담감이 줄었던 것"고 지적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평가이사는 "출제 오류 원인을 정확히 점검하고 개선하지 않으면 수험생에게 피해가 돌아간다"고 말했다.

● 수능 오류 총 8문제

1994년 수능이 시작된 뒤 지난해까지 출제 오류가 인정된 건 6문제였다. 2004학년도 국어 17번, 2008학년도 물리Ⅱ 11번, 2010학년도 지구과학Ⅰ 19번, 2014학년도 세계지리 8번, 2015학년도 영어 25번과 생명과학Ⅱ 8번이다.

이중 2014학년도 수능은 끝난 지 1년이 다 된 시점(2014년 10월 16일)에 법원이 세계지리 8번 문항을 '정답이 없는 오류'라고 판단해 큰 파장이 일었다. 해당 문항은 '유럽연합(EU)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보다 총생산액의 규모가 크다'는 보기를 정답으로 봤다. 그러나 수험생들은 총생산액을 비교할 기준시점이 제시되지 않았고, 지도 우측 하단에 적힌 (2012)라는 표시에 의해서도 NAFTA의 총생산액이 EU를 앞질렀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2010년 이후 총생산액은 EU보다 NAFTA가 크다"며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수험생들은 고를 수 있는 정답지가 없었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뒤늦게 세계지리 8번 답안을 모두 만점 처리했고 4년제 대학 430명, 전문대학 199명 등 629명이 추가합격 대상자가 됐다.

그러나 이 사태가 터진 지 한 달 정도 지나(2014년 11월 24일) 교육부는 2015학년도 수능에서 사상 초유로 '한 해 두 문항 오류'를 인정했다. 이에 김성훈 8대 평가원장이 자진 사퇴했다. 잇단 수능 오류에 교육부는 수능개선위원회 구성해 대책을 마련했고, 평가원은 지난해 수능부터 검토위원장 직위를 도입했다. 지난해 4월 취임한 9대 김 평가원장은 수능개선위원회 출신이다.

올해 17일 수능 날 브리핑에서 김영욱 검토위원장(서울시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은 "시험에서 제일 중요한 게 출제 오류를 줄이는 것"이라며 "검토단이 학생 입장에서 시험을 치르고 해당 분야 전문가가 교차검토를 했고 토론 과정을 철저히 기록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검토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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