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플러스]“문법대로 살지 말고 자기 꿈에 도전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1일 03시 00분


인문·과학·예술 혁신학교 건명원 최진석 원장

학교 이름 건명원은 밝은 빛을 세우는 터전이라는 뜻으로 최진석 교수가 정하고 현판 글씨도 직접 썼다.
학교 이름 건명원은 밝은 빛을 세우는 터전이라는 뜻으로 최진석 교수가 정하고 현판 글씨도 직접 썼다.


<<‘다른 결과를 기대하면서 같은 방법을 쓰는 사람은 바보다.’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통찰이다. 지금은 건명원(建明苑) 원장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문학 분야 스타 최진석 교수(58·서강대 철학과)에게 깊은 울림을 준 명언이다. 그가 뜻이 맞는 교수들과 함께 1년 과정의 인문·과학·예술 혁신학교를 세운 것도 이 울림에 따라 행동에 나선 결과다.>>

2015년 3월 서울 종로구 북촌로의 그림 같은 한옥을 개조해 문을 연 건명원은 한국 인문교육 지식의 아방가르드를 꿈꾼 전사들이 모인 곳이다. 기존과는 전혀 다른 교육 시스템을 통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는 게 이들의 목표다. 10일 건명원에서 만난 최 교수는 “그간 건명원을 운영하면서 새로운 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강한 욕구를 새삼 절감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건명원은 어떤 인재를 배출하려 하는가.

“다른 사람이 해놓은 생각의 결과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인재, 이미 있는 시스템 안에서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이 아니라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보려 노력하는 인재를 양성하려 한다.”

그런 인재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으로는 양성할 수 없다는 뜻인가.

“물론이다. 21세기에는 새로운 인재가 필요한데 우리는 몇 십 년 동안 똑같은 시스템과 방식으로 정답만 잘 고르는 교육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창의적이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인재는 타고 나는 것인가.

“타고난 자질이 중요하겠지만 그 자질을 잘 발휘하도록 하려면 교육과 훈련이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지식을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 사람이 해결해 놓은 결과만 그대로 들여와 배운다. 당연히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는 능력은 배울 수 없다. 이는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무장한 자유로운 인격을 갖춰야 비로소 가능하다. 바로 궁금증과 호기심을 촉발시키도록 하는 게 교육이다.”

‘창의성을 말살하는 교육’이라는 비판을 받는 우리나라 교육을 어디서부터 손봐야 하는가.


“무엇보다 교육을 둘러싼 여러 주체가 달라져야 한다.가장 먼저 교사, 그 다음엔 학부모가 변해야 한다. 교사도 과거 방식의 교육을 받고 성장했기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일선 학교에서 가능한 것부터 바꾸도록 해야 한다. 가령 학생들과 함께 놀아주고 대화를 많이 하려는 낮은 수준의 노력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자녀를 보는 학부모의 눈도 달라져야 한다.”



학부모, 특히 엄마의 과도한 교육열이 자녀를 망친다는 비판도 많다.


“우리나라 엄마들은 자녀 교육이 하나의 종교가 됐다.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엄마가 짜준 스케줄대로 학원을 순례하면서 성장한다. 친구들과 행복하게 뛰어놀던 어린 시절은 상상할 수 없다. 어른이라는 완벽한 단계로 제대로 성장하려면 이렇게 훈련받아야한다는 게 엄마들의 생각이다. 엄마들로서는 ‘네가 이 고통을 견뎌야 인간 단계인 어른이 된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목적론적 사고에서 비롯한 폭력이라는 걸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자기 자식을 이렇게 불행하게 만들 권리는 없다. 어린이에게는 어린 시절을 돌려줘야 한다.”

엄마들은 스스로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텐데….


“그건 사랑이 아니다. 자식을 고유한 인간으로 키우려면 따뜻한 눈으로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 청소년들은 어려서부터 교육의 대상으로만 훈련받아 왔고, 사랑의 대상으로 대접받아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자존감이 약하고 자신감도 떨어진다. 그래서 용기가 없고 모험심도 약하다. 당연히 창의성이 떨어진다.”

우리 현실에서 다른 학생들이 다 그렇게 하는데 내 자식만 유별나게 키울 수 없는 것 아닌가.

“공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물론 애들은 가만히 놔두면 공부를 안 한다. 그러나 그것까지 기다려줘야 진정한 사랑이고, 그래야 자식도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 청소년에게는 때론 방황도 영양제가 된다. 현재 대한민국은 공부 잘하는 사람만 성공하는 나라가 돼 버렸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됐는가.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된 교수 출신 장관이나 법조인들을 보라. 인격적으로 어떤 훈련도 받지 못해서 부정이나 부패에 저항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반성할 줄 모른다. 또 무조건 모른다고만 발뺌한다. 자식들을 잘 못 키운 결과다.”

이른바 많이 배우고 출세했다는 사람들의 행태가 실망스럽다는 얘기가 많다.

“지식이나 이론이란 것은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 생산되는 것이다. 그 문제란 다른 사람에게도 해당된다는 점에서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참여하는 것은 공적(公的)이다. 아울러 치료 행위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윤리적이다. 지식을 생산해 본 적이 없는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이런 훈련을 받을 기회가 없다. 그저 정답을 외우는 것만이 공부를 잘 하는 것으로 교육받아 왔다. 그러니 창의성이 없고 예의범절이 없다. 부정부패에도 무감각하다.”

스스로 방황한 적이 있는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공부를 곧잘 했는데 2학년부터는 갑자기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고 결석도 많이 했다. 다른 학생들도 많이 괴롭혔다. 그때 나한테 담배를 배워 지금도 끊지못하는 친구들이 가끔 원망한다. 어려서 죽은 형제가 있는 탓인지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서강대 철학과에 진학해서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다 박사과정 때인 1990년 신비한 체험을 통해 초라한 나 자신을 발견하고 당시로선 미수교국이었던 중국으로 건너갔다. 나 자신을 정리하려는 의도였다. 나중에 지도교수로 모셨던 베이징대 탕이제(湯一介)의 격려를 받고서야 비로소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때의 경험이 어떤 영향을 미쳤나.

“그때는 괴로웠지만 돌이켜보면 그때 생각의 근육을 키웠던 것 같다. 나와 맞지 않는 세상에 적응하려 하지 않고 나만의 세상을 구축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대학은 꼭 가야만 하는가.

“대학 진학 여부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꿈이 무엇이고, 자신은 어떤 사람이 되려고 하는가 하는 점이다. 모든 탁월함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하지 않는가.그런데 우리 현실은 어떤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전공을 선택하는게 아니라 점수에 맞춰 정해버린다. 자기만의 꿈이 있어야 자기만의 세계를 건립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청소년들은 다른 사람이 좋다거나 바람직스럽다고 정해준 것을 하도록 교육받는다. 우리 사회가 벽에 갇힌 사회가 돼버린 것은 필연이다.”

대학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인재를 길러내지 못한다는 비판도 많다.

“대학이든 고등학교든 모든 교육기관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인재를 배출해야 한다. 현재 대학은 과거 해왔던 방식 그대로 하다보니까 구시대적인 인물만 배출하고 있다. 새로운 유형의 인재란 융·복합적 인간, 창의적 인간이다. 무엇에 대해 많이 아는 인간이 아니라 새로운 문법을만들려 시도하는 인간이다.”

●설립 2년 건명원(建明苑)은…
1년 과정의 ‘현대판 서원’깵 당대 석학이 교수진, 중도 탈락률 40% 안팎


건명원 1기생을 상대로 강의하는 최진석 교수
건명원 1기생을 상대로 강의하는 최진석 교수


최진석 교수가 건명원을 세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나라 걱정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이 중진국 함정에 빠져 꼼짝달싹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여기에서 탈출해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그에 맞는 인재부터 양성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뜻을 모았다.

자수성가한 사업가 오정택 두양문화재단 이사장이 사재를 출연했고, 국내 최고 석학들이 합류했다. 현재 교수진은 모두 11명. 원장을 맡은 노장 철학의 대가 최진석 교수, 동양의 건축 미학에 정통한 김개천 국민대 실내디자인학과 교수, 뇌과학 연구의 권위자 김대식 KAIST 전자 및 전기공학과 교수, 고대 언어 연구에서 일가를 이룬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등 상임 교수 4명과 김성도 고려대 언어학과 교수,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최무영 서울대 문리천문학부 교수 등이다. 상임 교수 4명은 매년 강의를 하고 다른 교수들은 돌아가면서 참여한다.

매년 초 30명 안팎을 선발해 3∼12월에 매주 수요일(오후 6시 30분∼오후 10시 30분)과 토요일(종일 수업) 두 차례씩 수업을 진행한다. 19∼35세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지만 1, 2기생들은 주로 대학생과 직장인이었다. 학비는 무료다. 입학하려면 심층 압박면접 등 까다로운 과정을 통과해야 하고 졸업하는 것도 쉽지 않다.학사 관리가 엄격할 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시행하는 평가에서도 탈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5년 1기생은 30명 가운데 18명, 2016년 2기생은 37명 중 23명만이 졸업할 수 있었다. 40% 안팎의 높은 탈락률이다.

최 교수는 “교육부 인증 졸업장을 받을 수 없는데도 1, 2기에서 30 대 1 안팎의 높은 입학 경쟁률을 보인 것은 기존 교육에 답답함을 느낀 사람이 많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교육 프로그램 중엔 한 달에 한 번 토요일에 하는 걷기 명상도 있다. 온전히 자기 자신에 집중하라는 뜻에서 걷는 동안 묵언을 해야 한다. “걷기 명상은 창의성과 관련이 있어 더 늘리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창의성은 자기 안에서 튀어나오는 것이고, 운동은 바로 이런 자기를 만드는 중요한 활동이다. 그런데도 지금 학교 교육은 영어나 수학 시간을 늘리려고 체육 시간을 줄이고 있다. 글쓰기나 낭독도 중요한데 마찬가지로 사라져 간다.”

최 교수는 또 “아직은 교육 효과를 논할 단계는 아니지만 오정택 이사장이나 교수진은 학생들의 변화에 크게 만족한다”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초 2기생들이 15분씩 자유 발표를 했는데 학생들이 크게 변화됐음을 느꼈다. 무엇보다 사용하는 단어나 눈빛이 달라졌다. 대기업 취업이 목표였던 학생이 창업을 하겠다고 했고, 로스쿨 진학을 꿈꾸던 학생은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건명원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유례를 찾기 힘든 새로운 실험이다. 최 교수는 10년 후에는 상당히 큰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건명원 졸업생들이 우리 사회의 엘리트가 되기를 희망하지만 엘리트 교육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졸업생 가운데는 창의성을 무기로 사회적으로 대단한 성과를 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범하지만 독립적이면서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이들 못지않게 중요하다.”

글 윤영호 전문기자 yyoungho@donga.com 사진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건명원#교육#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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