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작은 변방 대학은 어떻게 세계 최고가 되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9일 03시 00분


창업가정신으로 기적 이뤄낸 핀란드 알토대

알토대 제공
알토대 제공
"자연이 아름다운 북유럽에서 가족과 함께 2주간 휴가를 즐기지 않으시겠습니까?
저희가 모든 걸 다 지원하겠습니다. 대신 그 기간 동안 한 과목만 강의해주십시오."

어느 날 갑자기 각 나라의 이름 좀 있다 하는 경영대학 교수들에게 정체불명(?)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보낸이는 핀란드의 한 대학교였다. 뜬금 없는 제안, 하지만 흥미를 느낀 교수들도 많았다. 원래 교육자란 학생이 있으면 어디든 가는 법. 그렇게 몇 개월 후 가족들을 데리고 핀란드 헬싱키에 도착한 교수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세계에서 몰려온 다국적 수강생들이었다. 북유럽의 작은 나라 작은 도시에 수십 개 국의 교수들과 학생들이 모인 것이다.

비밀은 이랬다. 깜짝편지로 경영학 각 분야의 유명 교수들을 섭외한 헬싱키경제대는 곧바로 전 세계에 다음과 같은 학생 모집 공고를 냈다.

“세계 최고 대학 교수들이 직접 날아와 가르치는 글로벌 올스타 MBA에 지원하세요. 전략은 ㅇㅇ 대학교의 ㅇㅇ 교수가, 마케팅은 ㅁㅁ 대학교의 ㅁㅁ 교수가…”

이 광고는 그야말로 대박을 쳤고 그덕분에 올스타 교수들에게 배우고 싶은 전 세계의 수많은 학생들이 앞다투어 헬싱키로 몰려든 것이다. 핀란드의 일개 학교에 불과했던 헬싱키경제대(HSE)는 그렇게 순식간에 세계적인 명문대학이 되었다.

대학의 최고 핵심 자원인 교수를 외부에서 빌려 쓰겠다는 이 과감한 결정은 훗날 ‘오픈플랫폼’이라 이름 붙여지며 헬싱키경제대의 시그너처 전략이 되었다. 다른 대학들이 아직도 내부 교수만으로 과정을 꾸리는 동안 헬싱키경제대는 수십 년째 자유롭게 세계 최고의 교수들을 초빙해 특별한 수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새로운 방식으로 선도적 자리매김

웬만한 기업 뺨치는 헬싱키경제대의 창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학위프로그램에 프랜차이즈 방식 서비스를 도입한 것이다. 핀란드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수업이 이루어지고 학위를 받을 수 있게 하기로 한 것. 그렇게 해서 1995년에 핀란드에서 8500km 떨어진 한국에서도 헬싱키경제대 MBA 과정이 시작되었다. 헬싱키경제대와 똑같은 오픈플랫폼 방식으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국내 최고 명문대 교수들과 해외 대학 교수들이 과목을 나눠 가르치는 이 과정은 오픈하자마자 크게 화제를 모으며 평생학습에 매진하는 직장인들을 열광시켰다. 2018년 11월 현재 한국에서 이 MBA 프로그램을 졸업하고 학위를 받은 학생은 무려 3800여 명, 단연 국내 MBA 스쿨 중 최고 규모다. 그 외에도 싱가포르, 폴란드, 중국, 대만에 진출해 졸업생들을 배출하고 있다.

헬싱키경제대는 멈추지 않고 2010년 또 한 번 새로운 혁신을 한다. 헬싱키공대(Helsinki University of Technology), 헬싱키예술디자인대(University of Art and Design Helsinki)와 통합한 것이다. 3개 학교가 합쳐진 이유는 간단했다. 미래에는 독립분야 전문성보다 다양한 분야의 융합과 협업능력이 핵심 경쟁력이 될 거라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비즈니스를 구성하는 세 가지 중심축(경영·기술·디자인)이 합쳐진 새로운 통합학교는 핀란드를 대표하는 예술가 알바 알토(Alvar Aalto)의 이름을 따 알토대(Aalto university)라 이름 붙여졌고 유럽 및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혁신의 상징이 되었다.

잉그마르 비요르크만 알토대 경영대 학장. 알토대 제공
잉그마르 비요르크만 알토대 경영대 학장. 알토대 제공
지난 13일 장충동 그랜드앰배서더 호텔에서 열린 한국 알토대 총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잉그마르 비요르크만 알토대 경영대 학장은 알토대의 성공비결을 기업의 성장과정에 빗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째, 부족한 핵심역량(Core competence)을 과감히 아웃소싱(Outsourcing: 외부조달)해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둘째, 적극적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고(Globalization) 셋째, 현재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내부혁신(Innovation)을 거듭해온 알토대의 성장사는 그 자체로 모범적인 성공 창업 스토리라 할 수 있다. 즉, 알토대는 DNA 자체에 창업가정신이 깊이 박혀있다고 할 수 있다. 덕분에 알토대는 창업경영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

창업 분야에서 뚜렷한 장점 갖춰

과거 미국에서는 경영학 분야별로 강점을 보이는 학교들이 달랐다. 예를 들어 하버드대는 전략, 노스웨스턴대는 마케팅, 일리노이대는 회계의 선두학교 등으로 전문분야가 나눠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근래 몇 년 새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스탠포드, MIT 등이 단기간에 막대한 부를 거머쥔 성공 청년창업가들을 배출하며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자 다른 모든 경영대학들도 앞다투어 창업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은 미국 및 전 세계의 모든 경영대학들이 창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창업이 명실상부 최고로 뜨거운 경영학 테마가 된 것이다.

슬러시
알토대는 바로 이 창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경영·기술·디자인 세 개 학교가 합쳐진 덕분에 각 분야의 걸출한 학생들이 서로 자유롭게 어우러져 팀을 이루고 창업에 도전하고 있다. 그 결과 교내에서 매년 100여 개의 창업기업이 탄생하고 있고 핀란드 전체 창업기업 중 50%가 알토대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 4년간 알토대에 와서 창업프로그램을 공부한 내외부 학생들(기업인, 직장인 등)도 2000명을 넘어섰다.

스타트업 사우나
스타트업 사우나
알토대의 한 창업동아리가 2008년에 시작한 창업아이디어 경진대회 SLUSH는 2018년 현재 130개국 2만여 명이 참가하는 세계 최고의 창업 페스티벌로 성장했다. 지금도 알토대 내에 있는 스타트업 사우나(Startup Sauna·창업보육프로그램)와 디자인팩토리(Design Factory·시제품제작프로그램)에서는 수많은 예비 학생창업자들이 밤을 새며 새로운 아이디어와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비요르크만 학장은 “많은 대학들이 창업교육에 뛰어들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곳은 많지 않다. 교수들은 창업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알토대에서는 창업을 가르치지 않는다. 창업의 열정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 그들에게 통찰력 있는 조언을 해줄 수 있는 현업 전문가들, 재능있는 창업팀에 관심있는 투자자들 등이 모일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데 더 주력한다. 교수는 창업 방법이나 거창한 이론을 가르치지 않는다. 창업기업에 요구되는 능력들을 연구한 결과를 공유하고 함께 생각해보는 기회를 마련할 뿐이다. 창업과 생존, 성장을 위해 필요한 진짜 살아있는 노하우는 우리가 마련한 생태계 구성원들끼리 서로서로 부대끼며 배워나간다.”고 말한다. 이런 설명은 표류하고 있는 한국 대학들의 창업교육 문제가 무엇인지 짚어준다. 교수들이 자기들도 안 해본 창업을 하라고 학생들을 다그칠 것이 아니라 창업 아이디어와 팀 구성, 자본 조달과 노하우 교류가 자유롭게 어우러질 수 있는 환경을 구성하는데 주력하면, 하지 말라고 말려도 창업 열기가 불타오를 거라는 조언이었다.

또한 그는 “알토대가 창업 쪽으로 강하다고 해서, 일반 직장인이나 기업인들 대상 경영교육이 약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요즘의 비즈니스 환경은 대기업, 중견기업 할 것 없이 모두들 스타트업식 혁신과 실행을 배우고 있기 때문에 MBA 과정에 지원하는 비즈니스맨들도 창업 방법론에 가장 큰 관심을 표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스타트업 방법론을 배우고자 하는 이유는 스타트업들이 대기업에 비해 압도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알토대가 주력하고 있는 창업교육은 작은 기업을 위한 경영전략이 아니라 모든 기업을 위한 급성장 경영전략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하며 “알토대의 창업교육 경쟁력이 결국 MBA와 다른 과정의 수준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창업교육 강화의 결과로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성장 경영전략을 가르치는 비즈니스스쿨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토대는 글로벌 3대 경영대 인증(AACSB, EQUIS, AMBA)을 모두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3대 경영대 인증을 모두 받은 학교는 전 세계 경영대의 0.5%(95개)뿐이고 한국에서는 아직 성공한 학교가 없다. 알토대 경영대 Executive MBA Seoul은 한국의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 Business School)이 파트너로 함께하고 있다.

헬싱키 해외과정 수업 모습
헬싱키 해외과정 수업 모습
2019년 3월 봄학기 입학 모집을 위해 11월 21일 오후 7시 서울 핀란드타워에서 입학설명회를 연다. 이번 설명회에는 본 프로그램의 동문인 글로벌 헤드헌팅기업 CEO를 초청하여 특별 강연과 함께 알토대 복수학위 MBA에 관해 설명을 할 예정이다. 또한 입학설명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바쁜 직장인들을 위해 강남, 강북 지역 소규모 상담도 열릴 예정이다. 원서접수 및 문의는 홈페이지와 전화로 하면 된다.

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에듀플러스#교육#알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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