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교육 체계화 필요… 진학 우선 사고 벗어나야 제자리 찾을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5일 03시 00분


현장 목소리로 듣는 진로교육의 문제점과 해결책 찾기

지난해 12월 21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동아일보 사옥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좌담회 참석자. 왼쪽부터 김현주 방이중 진로전담교사, 이건재 미양고 교장, 송현섭 면목고 교장, 이정희 공릉중 교장, 유석용 서울진학지도협의회 회장(서라벌고 교무부장). 양회성기자 yohan@donga.com
지난해 12월 21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동아일보 사옥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좌담회 참석자. 왼쪽부터 김현주 방이중 진로전담교사, 이건재 미양고 교장, 송현섭 면목고 교장, 이정희 공릉중 교장, 유석용 서울진학지도협의회 회장(서라벌고 교무부장). 양회성기자 yohan@donga.com
조희연 교육감 등 다수의 교육감이 추구하는 혁신교육, 미래교육은 이름만 다를 뿐 진로교육이 추구하는 가치와 다르지 않다. 진학 중심의 지식만 전달하는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개개인의 행복에 기여하도록 소질과 적성을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둔다.

진로교육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지금의 아이들에게 가장 적합한 교육이다. 시간이 걸리고 교사와 학부모까지도 더 노력해야 하는 측면에서 학교 현장에서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교육은 물건을 만들어 내는 공장이 아닌 만큼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진로교육의 가치는 공감하지만 진학이 우선시되는 현실을 무시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일선 학교에서 학부모의 진학교육 중시 요구를 방패로 진로교육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어 그 해결책을 찾는 게 시급하다.

한국 교육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갖고 있는 서울시 진로교육 해법을 찾기 위한 자리가 지난해 12월 21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동아일보 사옥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마련됐다. 이 자리에는 송현섭 면목고 교장, 이건재 미양고 교장, 이정희 공릉중 교장, 유석용 서울진학지도협의회 회장(서라벌고 교무부장), 김현주 방이중 진로전담교사가 참여했다. 주석훈 미림여고 교장은 서면으로 의견을 보내왔다.


진로교육 의미 살리지 못한 정책이 원인

송현섭 교장=교육정책 입안자들이 현장을 잘 알지 못한 채 정책을 짜다 보니 교육정책의 연속성이 떨어진다. 중학교 자유학기제를 통해 진로교육에 입문한 학생들이 고교에서는 진학 중심의 경쟁에 적응해야 한다. 코딩이 중학교에서는 필수지만 고교에서는 정보교과 과목 중 하나에 불과해 학생들은 혼란스럽다. 학부모의 진학 위주 사고와 지역사회가 유명 대학의 진학률로 고교를 평가하는 것도 진로교육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진로교육이 고교에서는 하나의 교과목으로 취급되고, 진로교육은 진로전담교사만 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도 문제다.


이건재 교장=형식적인 진로교육이 문제다. 학교 현장에서 십중팔구 진로교육 시간에 진학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중고생의 희망 직업 순위에서 공무원, 교사가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진로인식을 갖게 된 것은 형식적인 진로교육 때문이다. 진학과 직업에 대한 특성화 교육을 하는 중학교 진로교육이 체험 위주로 짜인 것도 문제다. 중학교 때 제대로 된 진로교육이 됐다면 대학 진학을 원하는 고교생 가운데 40%가량이 대학 진학 능력을 갖추지 못하는 현실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의 진로설계를 공교육에서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짐이 되고 있다.

이정희 교장=진로교육의 본질에 대한 고민 없이 그때그때 땜질식으로 처방하는 탓에 진로교육의 난맥상이 드러나고 있다. 특성화고 설립 취지와는 동떨어지게 특성화고 진학이 대학 진학에 유리하다고 선전하고, 실제 우수한 특성화고는 대학 진학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학교와 학급별로 분절된 진로교육이 이뤄질 뿐 생애 전반에 걸쳐 필요한 진로개발 역량 강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부모가 선호하는 진로가 지나칠 정도로 선명해 학생의 특성을 반영하거나 교육적 소신을 실현시키는 데 어렵다. 이 때문에 진로교육이 진학과 취업을 강제하는 수단으로 변형된 측면이 있다.

진로교육 목표는 기본 역량 키워주기

주석훈 교장=진로교육은 하고 싶은 일을 찾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한편 관련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을 포함한 사회에서는 직업 선택을 돕는 교육으로 오해하고 있다. 진로교육이 활동과 행사 위주로 진행되다 보니 진로-전공-직업으로 이어지는 고리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학업 능력도 진로교육의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전공과 직업 선택으로 가는 데 진로교육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탓에 학부모와 교사들에게 진로교육이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 진로전담교사들이 업무 범위를 진로 쪽으로 좁힘으로써 다른 교사들로부터 진로교육에 필요한 공감과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도 지적하고 싶다.

유석용 회장=진로교육을 강화하는 데 뒷받침이 됐던 2015 교육과정의 근간이 흔들려 학교 현장에서 진로교육 확산과 효율을 올리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학생부종합전형은 진로교육과 호응하는 것이지만 작년 대입 비율 조정 때 정시에 무게가 더 실렸다. 장기적으로 고교학점 선택제, 고교 절대평가제 등이 대입 전형 방법보다 학생들에게 더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한번 합의된 교육체계는 쉽게 흔들려서는 안 된다. 정부도, 사회도 교육은 백년대계임을 직시해야 한다. 진로교육의 질과 방법이 학교마다 편차가 있는데, 이는 진로전담교사의 능력과 의지, 교장의 진로교육 이해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김현주 교사=학부모의 진로교육에 대한 인식 부족이 진로교육 활성화의 걸림돌 가운데 하나다. 송파구 관내 학교에서 근무하다 다른 관내 학교로 옮겼는데 두 지역 학부모들 간에도 진로교육을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있다. 그만큼 지역에 따라 학부모들 간 인식에 큰 차이가 있다. 한 반 25명이 다 사용할 수 없는 열악한 학교 인프라와 체험 위주의 중학교 진로교육이 규제 탓에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체험 활동에 해당 구의 지원이 중요한데 강동구는 지원이 많은 반면 송파구는 없다. 진로전담교사가 한 학교 한 명에 불과해 힘에 부칠 때가 많고 진로전담교사 사이에서도 역량 차이가 난다.


중고교 연계 진로교육 시스템 필요

주석훈 교장=진로-전공-학업능력-대학진학이 연계될 수 있도록 중학교와 고등학교 진로교육체계가 짜여야 한다. 중학교에서는 진로에 대한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활동이 중심이 돼야 하고, 고교에서는 대학 진학을 위한 연계작업을 강화해야 한다. 대학에서 선택할 전공을 염두에 둔 과목 선택과 역량 개발, 학업 능력 향상이 모든 학생에게 적용될 수 있도록 진로교육 체계화가 필요하다. 진로가 중심이 돼 교육을 이끌어 가는 것인 만큼 진로전담교사의 업무영역이 지금보다 넓어져야 하고 의식 변화도 요구된다. 대학도 지금처럼 진학 정보만 주거나 단순한 전공 정보를 알리는 데서 벗어나 고교에서 진로교육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한다.

이정희 교장=
중학교 자유학기제는 다양한 직업체험을 경험한 학생들이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찾아보려는 시도를 하는 등 진로교육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진로교육의 본질에 다가가려면 학교에서는 특정 직업에 맞는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치기보다는 변화하는 사회와 직업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갖도록 유도해야 한다. 중학교 진로교육은 체험활동과 진로상담이 더욱 활성화돼 학생 개개인의 진로설계와 역량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줘야 한다. 생애를 통틀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필요한 것을 스스로 익히는 자세를 공교육을 통해 기를 수 있어야 한다.

이건재 교장=신설될 국가교육위원회는 국가 차원의 진로교육 지원체계 구축에 힘써야 한다. 국가진로교육센터는 일회성 행사 위주에서 벗어나 관계자 연수나 진로교육 기초 연구 등 장기적인 진로교육정책이 가능하도록 인프라를 만드는 데 필요한 일들을 해야 한다. 중고교의 체계적인 진로교육시스템 개선도 요구된다. 중학교에서는 △자유학년제 정착 △학년별 진로전담교사 배치로 고교 진학 전 진로를 결정하기 위한 실질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 중학교 졸업 후 상급 학교에 가기 전 1년 동안 직업체험을 하는 전환 학년제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 고교는 대입 위주 고교체계를 개선해야 한다. 특성화고를 세분하고 일반고에서 정상적인 교육과정 이수가 불가능한 학생들을 위한 공립형 대안학교 개설을 제안한다.

진로교육은 모두가 하는 것

김현주 교사=학교가 자율성을 갖고 진로교육 활성화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체험이 중요한 중학교 진로교육에서 인솔할 교사가 모자라 체험활동을 줄이고 있다. 지자체 진로교육 예산 편성과 마을 결합형 학교 예산 배정에도 융통성을 발휘하면 체험 교육에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지고, 지역적 균형도 맞을 것이다. 중학교의 진로교육의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진로전담교사를 위한 연수가 필요하다. 현장에 필요한 연수가 없어 진로전담교사들끼리 모여 스타트업, 코딩 등 시대 흐름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교육을 하고 있다.

송현섭 교장=진로교육은 학교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학부모, 지방자치단체, 정부가 함께 나서야 한다. 진학 의욕이 부족한 학생들을 위한 직업교육도 필요하다. 현장에는 다양한 진로교육 수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진로교육에 대한 이해가 높은 전문가들이 진로정책을 입안해야 한다. 사립고에서는 다양한 교과 교사가 없어 학생들이 교과 선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사 자원이 풍부한 공립과 사립학교 간 교원 교류가 필요하다. 진로전담교사들이 진학을 알고 진로지도에 나서면 더 효과적이다.

유석용 회장=진학 위주 교육에서 진로교육이 영역을 넓히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다행히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진로교육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조 교육감의 뜻을 뒷받침할 실무그룹이 없는 것도 서울의 진로교육이 지지부진한 원인 가운데 하나다. 성적이 높든 낮든 모든 아이를 보듬는 교육에 필요한 것은 모든 교사가 진로마인드를 갖고 수업에 임하는 것이다. 진로교사를 충원할 때 연공서열보다는 진로교육에 대한 전문성과 열정을 더 고려해야 한다. 학생 수가 500명 이상인 학교에는 진로전담교사를 늘려야 한다. 학생 및 학부모를 대상으로 학업 집중도가 다소 떨어지는 여름과 겨울방학 전 학기말고사 이후, 2월 등교기간 등을 이용해 진로교육의 필요성을 집중적으로 알려야 한다. 교사 대상 진로교육을 1, 2월 중에 필수 연수로 실시해 새 학기 학생지도에 적용될 수 있도록 시스템화해야 한다.

정리=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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