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균희 한국약학교육협의회 이사장이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사회’와 ‘역할’이다. 지난달 21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한 이사장은 “사회가 다변화하면서 약사의 역할, 약학교육의 역할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 약학교육의 발전은 사회와 떼려야 뗄 수 없다. 보다 많은 의료현장과 산업현장에 약사가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약학교육의 선진화 방안으로 전문학사 제도, 의료수가 반영 등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융합교육이 강조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약학교육의 진가가 드러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연세대 약학대학장이기도 한 그는 “약학에는 화학, 생물, 의학, 경제학이 다 있다. 학문의 장벽이 없다. 진정한 ‘멜팅 폿(융화)’을 구현해낼 수 있는 학문이 바로 약학”이라고 설명했다.
시대 흐름에 맞는 약학교육과 국내 약학교육의 현주소는?
약학교육은 시대적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또 새로운 시도들이 제도권으로 정착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최근 약학교육이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한 것이 바로 국제적인 팀 의료 추세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의사 위주의 진료에서 약사, 간호사 등이 진료에 같이 참여하는 팀 의료 체제로 전환하면서 임상약사(Pharm D) 교육이 도입됐다. 국내에서도 이런 추세에 부응하기 위해 1999년 의약분업을 시행하고 또 2011년에는 미국식 임상약사(2+4학제)로 전환하기도 했다. 21세기 들어 기존 의약품 제조 중심의 교육에서 학생들의 직무능력과 임상능력을 강화하는 교육이 강조되고 있다. 약학교육이 사회가 요구하는 중요한 기대와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왔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미래 사회는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바르게 변화한다. 학생들이 약사로서 대응해야 할 기술적인 콘텐츠도 방대해지고 있다. 과연 현재의 약학교육이 미래 기술 수요에 대응할만한 유연성과 진보적인 역량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약학 교육의 선진화는 사회공익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선진국에서는 팀 진료에 약사가 참여하면서 이미 긍정적인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 보편화되고 있는 지역공공의료를 보면 사회 취약 계층에 적절한 의료서비스 제공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약사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약사 양성교육에도 공공약료를 포함시키는 쪽으로 개편을 진행하고 있다. 약학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주목할 부분이 많다.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의료에 지불하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약학은 이러한 보건의료산업에서 큰 축을 담당하는 약물 개발, 허가, 사용, 사용 후 연구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약학의 학문 융합적 특성이 산업적 가치와 연계될 경우 좋은 롤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소통과 협력을 통해 융합과 미래가치를 추구하고 또 산업적인 성과물을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약사의 전문성을 사회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아직 국내에서는 미국, 일본 같은 팀 의료가 활성화되지 않았다. 환자 치료에 약사의 전문성이 반영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약학 교육이 실제 의료현장에서 활용되지 않는 것은 결과적으로 국민 건강권 침해로 이어진다. 고령사회에 진입하는 한국도 약사의 전문성을 미래 공공의료시스템에 활용해 방문약료를 활성화해야 한다.
산업적인 측면도 강조해야 한다. 보건 의료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선 현장에서 사용하는 고부가가치 제품의 개발이 필수적이다. 약학의 산업화는 단순 이윤 추구를 넘어서 국민 건강권과 인재 양성으로 이어진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해결방안이 있다면?
무엇보다 약사들이 활동할 사회적 공간이 매우 협소하다고 본다. 임상과 직무 교육을 통해 배출된 임상 약사가 병원에서 팀 진료의 일원으로 일하면서 경험을 쌓고 자기 계발을 하는 제도와 평생교육 프로그램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약사의 팀 진료 참여가 단순 봉사로 처리되다 보니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약사의 팀 진료에 대한 적절한 의료수가 반영 및 보장이 필요하다. 실제로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대학병원에서도 약사의 진료서비스 참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단계다.
약사에 대한 사회적 지위 보장도 시급하다고 본다. 학생들에게 희생만 강요할 순 없다. 현재 약사들은 6년을 공부하고도 학사만 인정받고 있다. 전문 학사 제도를 도입해 의사와 동일한 수준의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는 것이 약사의 전문성을 높이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약학은 어떻게 대학에 기여하는가?
대학에 많은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불확실성의 증가로 위기도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언제나 위기는 기회다. 위기에 슬기롭게 대처한다면 대학과 사회의 발전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 약학에는 화학, 생물, 의학, 경제학이 다 있다. 융합적 성격이 강한 약학이 가진 산업적인 가치를 극대화한다면 대학이 직면한 문제와 추구하는 가치에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특히 보건의료산업과 연계한 교육인프라를 교내 구성원과 공유한다면 산업적인 성과물을 창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선 자체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더 이상 국가고시 과목에만 연연하지 않고 미래 지향적인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현재 제약 분야의 과목은 잘돼 있지만 바이오 분야 과목은 거의 전무하다. 4차 산업혁명에 맞게 교육 현장 또한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교수들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미래에도 필요한 학문이 돼야 한다.
지역 균형 개발에도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약대가 고립될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로 팔을 뻗어야 한다. 사회복지, 간호사 등과 연계해 공공 의료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연구개발에서도 파편적으로 논문을 낼 것이 아니라 약대가 하나의 연구플랫폼이 돼야 한다. 중심이 돼줘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약학이 지역을 대표하는 하나의 코드가 될 수 있다. 약대를 중심으로 산업단지가 형성된다면 지역 인재들을 머물게 할 수 있다.
연세대 약대의 비전은?
연세대 약대는 앞으로 송도 지역의 다양한 제약바이오 분야의 연구, 교육 수요에 맞춰 미래 지향적인 첨단 바이오 의약품 연구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바이오벤처 기업인 에스엘바이젠과 공동연구소를 세우고 교수급 인력을 공유하는 윈윈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또 바이오 분야의 최고 연구자를 영입해 5년 이내 국내 최고의 연구 집단으로 성장하겠다는 계획이다.
바이오융합 분야의 중심에서 의약품 개발의 전주기적 연구, 첨단 바이오의약품 및 진단기술을 개발해 연세대 국제캠퍼스가 신약 개발의 메카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한균희 연세대 약학대학장은
1965년 경기 수원 출생 / 서울대 제약학 학사 / 서울대 약학 석사 / 펜실베이니아주립대 화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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