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나의 NIE]유형종 무지크바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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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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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현실경제 눈뜨게 하는 텍스트”
故 지호준 교수의 NIE 열정 생각나

신문활용교육(NIE)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고(故) 지호준 교수다. 지금은 없어진 예비역 사관후보생, 즉 1980년대 석사장교 시절에 육군 제3사관학교의 같은 중대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그를 알게 됐다.

제대 후 나는 대우증권 기획실에서, 그는 같은 건물의 경제연구소에서 일했기에 늘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한마디로 일 욕심과 성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친구였다. 일천한 경력의 신참 연구원이 방대한 연구 자료를 수시로 척척 써내 선배들을 놀라게 했고, 젊은 패기를 넘어선 통찰력이 담긴 ‘한국책략’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19세기 말 청나라 사람 황준헌이 쓴 ‘조선책략’에서 따온 제목으로 당시 대통령이 휴가지에 가져갈 책으로 소개되는 등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즈음, 겨우 30세의 나이에 안타깝게도 백혈병에 걸리고 말았다. 힘겨운 치료 과정을 견디고는 1994년 국립 안동대로 옮겼다. 건강을 지키려면 과로에 시달리는 연구소보다는 학교가 나을 것 같다고 당시 그는 말했다. 그런데 교수가 되더니 더 몸을 사리지 않고 일했다.

그가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사용한 가장 중요한 방법이 NIE였다. 그는 학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후에 경영학(재무관리) 박사를 받았기 때문에 개별 기업을 넘어선 거시적 안목을 중요시했다. 그래서 매시간 신문 경제면을 펴놓고 수업을 시작했고, 관련 내용을 학생들이 영어로 토론하도록 유도했다. 현실경제에 대한 감각과 자신감을 동시에 불어넣으려는 시도였다. 시험은 보통 5시간 이상 치르도록 했다.

또 지방대학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려면 외부인의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학생들에게 각종 논문대회에 나가도록 적극 독려했다. 부임 5년 만에 그가 지도한 안동대 경영학과 학생들의 논문 32편이 크고 작은 대회에서 입상했다. 서울 일류대학의 석·박사 과정 수재들을 안동의 학부생들이 누른 기적이라며 당시 여러 언론이 대서특필했다. 그가 신문을 이용하여 수업하는 장면은 TV에 길게 소개되기도 했다.

쇠약해진 몸으로 학생 지도뿐 아니라 방대한 저서와 논문 발표를 쉬지 않던 지 교수는 백혈병이 재발하여 2003년 4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42세의 한창 나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NIE의 확산을 계기로 지 교수의 열정을 되새겨보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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