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나의 NIE]김용란 건양대 의대 김안과병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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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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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치료하는 내게, 신문은 세상을 바르게 보는 눈

신문하면 초등학교 시절 방학숙제였던 종이 탈 만들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신문을 잘게 찢어 하룻밤 정도 물에 불려놓는다. 종이가 죽처럼 풀어지면 빨간색 바가지 위에 붙이고 뿔과 주먹코를 만들어 그늘에서 하루 정도 말린다. 색칠까지 해야 완성되는데 개학 전날 당일치기가 절대 불가능한 고난도의 숙제였다. 어린 나에게는 비교적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 나름 볼만한 작품(?)이었다고 기억된다.

신문과의 두 번째 인연은 폐휴지 모으기다. 요즘에는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예전에는 매주 일정량의 폐휴지를 학교에서 수거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던 아버지는 조간과 석간을 계속 읽었다. 집에는 항상 신문이 넘쳐나서 우리 형제들은 친구들에게도 폐휴지를 나눠 줄 수 있었다.

철이 들면서 귀한 정보와 글을 완성하기까지 필자들이 들였을 숨겨진 정성이 눈에 들어오면서 신문의 진가를 알게 됐다. 신문읽기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시기 또한 이와 비슷했다. 아버지 곁에서 밥상에 신문을 펼쳐 놓고 서로 돌려보며 식사하던 모습은 우리 집안의 익숙한 풍경이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요새도 밥 먹을 때 신문을 보는 습관이 이어지고 있다.

신문은 오래전부터 나에게 친근하고 고마운 존재다. 돌이켜보면, 힘든 수험생 시절 교과서 밖의 읽을거리를 신문이 제공했다. 엄하고 무섭게만 느껴졌던 아버지와의 대화 소재를 공유할 수 있게 만든 도구도 신문이었다.

대화를 통해 비슷한 생각을 나누고 다양한 공감대를 형성해서일까. 나는 지금 아버지와 같은 안과의사의 길을 걷는 중이다. 안과의사가 되고 벌써 20여 년. 신문은 여전히 내 가까운 곳에서 세상을 보는 눈이다. 진료실 밖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여주고 안과 이외에 다른 분야의 최신 의료지식을 알려주는 학습 도우미 역할도 한다.

신문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며 안과를 찾는 중장년층이 많다. 지면의 일부가 잘 보이지 않는다거나 전체가 휘어져 보인다면 망막질환이나 황반변성 같은 안과 질환을 의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작은 글씨만 희미하게 보이는 증세라면 나는 “이제 우리가 그럴 나이잖아요”라고 웃으면서 설명한다. 환자의 불편함을 함께 나누는 식으로 얘기하려고 한다.

작은 글씨가 흐릿해진 건 세상을 보는 눈이 흐려져서가 아니다. 눈앞의 작은 일에 마음을 너무 쓰지 말고 더 큰 일에 마음을 열라는 지혜의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환자들에게 이렇게 얘기해주면 대개 걱정을 내려놓고 안도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이래저래 신문은 고마운 매체다.

김용란 건양대 의대 김안과병원 부원장
#신문과 놀자#나의 NIE#김용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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