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주니어를 위한 칼럼 따라잡기]안중근 뮤지컬의 하얼빈 공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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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중국의 국경 부근에는 여진족 말로 된 지역 이름이 존재한다. 여진족은 고려시대 때 금나라를 세워 만주지역을 지배했으나 몽골의 침략으로 금나라가 망하자 여러 부족으로 나뉘었다. 함경북도에 있는 탄전(석탄이 묻혀 있는 땅)인 ‘아오지탄전’의 ‘아오지’는 여진족 말로 ‘불타는 돌’이라는 뜻이다. 중국 ‘하얼빈’은 여진족 말로 ‘명예’를 일컫는다. 과거 이 지역이 여진족의 땅이었음을 알 수있다.

하얼빈은 19세기 말 러시아가 동청(東淸)철도를 건설하면서 이곳에 역을 만든 뒤 오랫동안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우리나라의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러시아와 회담하러 온 일본의 정치가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쏴 숨지게 만들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당시 일본이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고 식민 지배하는 데 앞장섰으며 대한제국(1897∼1910년·우리나라의 이름)에 을사늑약을 강요한 인물. 을사늑약이란 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 대한제국과 강제로 맺은 조약이다. 그 직후 체포된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어로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외쳤다.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 ‘영웅’이 최근 하얼빈에서 공연됐다. 그의 의거(義擧·정의를 위해 개인, 집단이 의로운 일을 함)현장에서 올린 첫 무대다. 안중근 의사는 끝까지 의연하고 당당했다. 그는 일본에 체포된 다음 이토 히로부미가 저지른 잘못 15가지를 조리 있게 말했다. 쑨원, 위안스카이 등 당시 중국 지도자들은 안중근 의사의 용기와 올곧은 자세를 높이 찬양했다.

2009년 우리나라의 연극·뮤지컬 연출가 윤호진 씨는 중국에 진출할 생각을 하며 뮤지컬 ‘영웅’을 만들었다. 6년 전 ‘이 작품을 하얼빈에서 공연하고 싶다’고 제안했을 때 하얼빈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과 사이가 나빠질까 봐 걱정했던 것. 하지만 최근 중국과 일본의 관계가 멀어지면서 분위기는 빠르게 바뀌었다. 한 나라의 역사를 다룬 예술작품이 해외에 진출해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 작품의 내용을 깊이 공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해외에 뻗어 나가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뮤지컬 ‘영웅’이 유럽, 미국에서도 뜨거운 박수를 받는 작품으로 우뚝서길 바란다.

동아일보 2월 10일자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칼럼 재정리
사설을 읽고 다음 문제를 풀어 보세요

1. 1909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본문에서 찾아 아래에 적어 봅시다.
2. 다음 중 본문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것을 고르세요.


① 최근 중국과 일본의 관계가 멀어졌다.

② 중국은 뮤지컬 ‘영웅’의 하얼빈 공연을 처음에 반기지 않았다.

③ 뮤지컬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④ 1910년 대한제국은 일본의 강요로 을사늑약을 맺었다.
3. 다음은 안중근 의사가 순국(殉國·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침)하기 전 우리 민족에게 남긴 글입니다. 이 글을 읽은 뒤 안중근 의사에게 오늘날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편지를 써보세요.
내가 우리나라의 독립과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3년 동안 해외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바람을
먹고 이슬에 잠잔다는 뜻으로, 객지에서 많은고생을 겪음을 이르는 말)하다가 끝내 그 목적
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들 2000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해 학문에
힘쓰고 실업(경제에 관한 사업)을 진흥(떨치어 일으킴)하며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여한이 없겠노라.

김보민 동아이지에듀 기자 gomin@donga.com
#안중근#뮤지컬#하얼빈#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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