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과학이 보이는 CSI]불이 난 원인을 찾아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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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난 원인을 찾아라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A 군이 학교에 갔더니 친한 친구 B가 울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 왜 우느냐고 했더니 밤사이 집에 불이 났는데 아빠가 깨워 밖으로 나가라고 해 가족은 무사했는데 친구가 가장 아끼던 반려견이 세상을 떠나 슬프다고 했습니다. A 군은 화재가 정말 무섭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궁금증이 생겨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불이 얼마나 나는지 알아보니 2015년 화재 사고는 4만4435건이었고, 사망자도 253명이나 될 정도로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불이 나려면 3가지 요소가 필요하다는 것도 찾았습니다. 연료가 첫 번째 요소이고, 산소가 그 두 번째 요소이며, 마지막은 불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불이 나지 않습니다. 세 가지가 충분해 불이 나더라도 한 가지가 없어지면 불이 꺼지게 된다는 사실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즉 불의 3가지 요소는 불이 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지만 불을 끌 수 있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불이 붙을 연료가 없으면 불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산불이 나면 나무를 벤다고 합니다. 그리고 불과 산소가 만나지 못하게 하면 불을 끌 수가 있어 불에 소화기를 방사하거나 주변의 물, 모래 등을 뿌리는 것이 바로 이런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하니 더 흥미로웠습니다.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서나 경찰서에서 그 원인을 조사합니다. 화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고 또 누구 잘못으로 불이 났는지 밝혀 손해의 책임을 가리려는 목적이라고 합니다.

○ 화재 원인을 밝혀라!

 화재 사건이 발생하면 현장에 타다 남은 전선이 있는지, 연료 가스관이 절단되거나 코크가 열려서 가스가 누출된 흔적이 있는지, 성냥이나 전기 회로의 사용 흔적 또는 인화성 물질을 뿌리고 방화한 흔적이 있는지 등 과학적 근거를 통해 화재 원인을 밝힙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화재가 시작된 곳을 찾는 것인데 이곳이 화재의 모든 비밀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액의 보험금을 타려고 일부러 불을 내고 우연한 사고에 의해 불이 난 것처럼 위장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불씨가 없는 곳에서 방화를 하게 되므로 불에 타기 쉬운 휘발유와 같은 물질을 여러 곳에 뿌리고 불을 지르기 때문에 인화성 물질을 찾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낸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은 범인이 현장에 있었고, 현장에 확실한 목격자가 있어서 원인이 곧 밝혀졌지만 대부분의 방화 사건은 범인이 사라지고 목격자가 없는 경우가 많아 화재 현장의 잔해로부터 그 원인이나 증거를 추적해야 하는 어려운 과정이 있습니다. 방화 사건이 발생하면 최초로 불이 일어난 곳으로 추측되는 지점의 물체에서 석유 냄새가 나는지 조사하고, 그 부위에서 채취한 증거물을 가스크로마토그래피로 검사해 화재 원인 물질을 확인하면서 방화를 증명하게 됩니다. 화재 사건에서 원인을 규명하는 일은 정말 어려워 먼지와 냄새가 가득한 곳에서 불에 타고 남은 재와 며칠씩 씨름하며 어디에서 불이 시작돼 어느 방향으로 진행되었는지 찾는다고 합니다. 

○ 숭례문 방화범을 찾다

 2008년 2월 10일 우리에게 600여 년 동안 자긍심을 주었던 국보 1호인 숭례문이 화재로 전소되면서 국민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숭례문 방화 사건이 발생하자 화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화재팀은 급하게 화재 현장으로 출동해 전기시설에 의한 누전 가능성, 방화 가능성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하며 조사했습니다. 현장조사 결과 숭례문 2층에는 전기시설이 없었고, 1층에는 조명등이 있었지만 누전차단기가 있어 전기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현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숭례문 1층에서 일회용 라이터 2개와 불에 탄 나뭇조각 등이 발견되었는데 일회용 라이터가 있다면 방화일 가능성이 높아 화재팀은 방화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물을 찾는 데 주력했습니다. 방화라면 타다 남은 연소 잔류물에서 시너 성분 등이 나올 게 확실하기 때문에 타다 남은 잔류물을 조심해서 채취했습니다. 결국 가스크로마토그래피 검사법으로 화재 원인 물질을 확인해 방화를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경찰은 목격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화재 직전 무인경비 시스템에서 외부인의 침입을 알리는 경보음이 울렸다는 사실을 파악한 다음 화재 당시 상황이 찍힌 주변 건물 등의 폐쇄회로(CC)TV를 확보했습니다. 결국 데이터베이스(DB) 검색을 통해 범인의 외모와 특징에 따라 화재 발생 23시간 만에 방화 용의자를 체포했습니다. 범인이 숭례문 서쪽 비탈로 올라가 접이식 알루미늄 사다리를 이용해 건물 안으로 침입한 다음 2층 누각으로 올라가 페트병에 담아 온 시너를 바닥에 뿌리고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여 1, 2층을 전소시켰다는 것을 화재팀 조사로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 살인 사건인가, 화재로 사망했는가?


 사람을 죽이고 화재로 사망한 것처럼 위장하려고 불을 질렀다면 살인 사건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럴 때 부검을 통해 콧속, 기도, 폐에 그을음이 있는지 살펴보면 판명할 수 있습니다. 살아 있을 때 불이 나면 기도로 연기가 들어가 콧속, 기도, 폐에서 그을음이 검출되지만 죽은 사람은 숨을 쉬지 않기 때문에 그을음이 없기 때문이죠. 또한 사망한 사람의 혈액을 채취해 일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해 판정할 수도 있습니다. 일산화탄소는 화재가 날 때 불완전 연소가 되면서 생기기 때문에 화재가 났을 때 살아서 숨을 쉬었다면 혈액에서 일산화탄소가 검출됩니다. 사망한 다음 화재가 발생하면 숨을 쉬지 않기 때문에 혈액에서 일산화탄소가 검출되지 않겠죠.
 
정희선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
#불#화재#숭례문 방화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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