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별별과학백과]더 깊고 복잡하게… 갯벌 건축왕을 뽑아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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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식굴의 본을 뜨는 과정. 경화제를 섞은 액상수지를 서식굴 입구에 부은 뒤(1), 단단하게 굳은 플라스틱을 꺼낸다(2). 이를 3D 스캐너로 컴퓨터로 옮기면 된다(3). 띃는 이렇게 본을 뜬 흰이빨참갯지렁이의 굴이다. ⓒ구본주
갯벌에는 건축왕이 산다?!

 갯벌은 다양한 생물이 사는 터전이다. 갯벌에 사는 게 종류만 200종에 달한다. 이 밖에도 개불, 쏙, 조개 등 총 8080여 종의 생물이 살고 있다. 이런 생물은 갯벌에 구멍을 파서 ‘서식굴’을 만들고 산다.

 갯벌 생물의 집인 서식굴은 포식자를 피할 수 있는 피난처이자, 썰물 때 숨을 쉴 수 있는 생존의 공간이 된다. 또한 서식굴은 갯벌의 흙과 물이 만날 수 있는 면적을 넓혀, 깊은 곳에 사는 생물들에게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흙을 붓고 공장을 짓는 등 갯벌을 개발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갯벌의 생태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진 지금은 많은 나라가 갯벌을 보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생태기반연구센터 구본주 연구원은 지난해 6월부터 갯벌에 사는 생물들의 집을 연구해 왔다. 그 결과 올해 8월 우리나라 갯벌 10곳에서 사는 대표적인 생물 21종의 서식굴의 본을 뜨는 데 성공했다.

 서식굴의 본을 뜨려면 우선 플라스틱을 녹여 액체로 만든 액상수지에 플라스틱을 굳게 하는 경화제를 섞어서 서식굴에 붓는다. 그 다음 크기에 따라 13분에서 4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굳은 플라스틱을 캐낸 다음 3D 스캐너를 이용해 컴퓨터에 굴의 모양을 저장한다. 이렇게 본을 뜬 서식굴 중에서는 특이한 생김새나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갯벌 건축왕’의 것들이 있다.<사진 1> 대표적인 건축왕들을 만나 보자.

가재붙이는 갯벌 생물 중에서도 가장 큰 서식굴을 짓는다. ⓒ구본주
가재붙이는 갯벌 생물 중에서도 가장 큰 서식굴을 짓는다. ⓒ구본주
○ 건축 장인, 가재붙이와 흰이빨참갯지렁이


 가장 큰 굴을 짓는 것은 ‘가재붙이’다. 가재붙이는 몸길이 5∼8cm에 커다란 두 개의 집게발을 갖고 있는 갯벌 생물로 가재와 쏙을 닮았다. 하지만 이런 작은 몸집에도 불구하고 가재붙이가 지은 서식굴은 최대 2m 깊이로, 굴의 전체 길이가 평균 8.6m에 달한다. 굴의 부피는 최대 18L 이상이다. 몸집과 비교하면 3000배 이상이 되는 크기다.

 이렇게 거대한 서식굴을 짓는 이유는 바닷물을 충분히 담기 위해서다. 가재붙이는 바닷물을 입으로 빨아들여 그 속에 있는 유기물을 걸러서 먹는다. 그런데 갯벌에서도 육지에 가까운 쪽에 집을 짓고 살다 보니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는 기간이 최대 15일 동안 이어질 때도 있다. 그동안 먹이활동을 하려면 집 안에 많은 바닷물을 담고 있어야 한다. 가재붙이가 지은 집은 지금까지 알려진 생물의 서식굴 중에서 가장 크다.<사진 2>

 다양한 방을 만드는 건축왕도 있다. 입에 한 쌍의 흰색 이빨이 있는 ‘흰이빨참갯지렁이’다. 이 갯지렁이는 우리나라에서도 특히 강화도 갯벌에 많이 산다. 숭어를 비롯한 물고기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물고기 잡는 데에 미끼로 쓰이곤 한다. 하지만 흰이빨참갯지렁이는 아주 작은 진동도 감지할 수 있어서 잽싸게 서식굴 속으로 숨어버릴 수 있다.

 흰이빨참갯지렁이는 최대 2m 길이까지 자란다. 따라서 몸 크기만큼이나 서식굴도 크다. 깊이는 최대 1m이고, 굴의 전체 길이는 1.8m나 된다. 가장 큰 특징은 일자로 쭉 뻗은 서식굴의 군데군데에 둥글둥글한 방이 있다는 것이다.

 서식굴에 방을 만들어 놓은 이유는 사냥 습성과 관계가 있다. 흰이빨참갯지렁이는 몸이 크기 때문에 굴속에 몸의 대부분을 숨긴 채, 몸의 앞부분만 쏙 내밀고 갯벌 표면에 있는 유기물을 걸러 먹는다.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서다. 만약 먹이를 먹던 중에 포식자에게 잡혔다면 방 속에 있는 수많은 다리로 방벽을 꽉 붙잡고 버틸 수도 있다. 배설을 할 때는 방 속에서 몸을 돌려 몸의 뒷부분을 굴 밖으로 내민다.

털보집갯지렁이의 집과 그 안에서 같이 사는 옆길게. ⓒ구본주
털보집갯지렁이의 집과 그 안에서 같이 사는 옆길게. ⓒ구본주
○ 공생의 신비, 털보집갯지렁이와 옆길게


 몸 앞부분에 털이 많이 나 있다고 해서 ‘털보집갯지렁이’라 불리는 갯지렁이는 더욱 특이한 서식굴을 만든다. 앞에 나온 생물들의 집과 달리 털보집갯지렁이의 서식굴은 단순하게 생겼다. 빨대처럼 기다란 관 모양이다.

 갯벌에 가면 털보집갯지렁이의 서식굴이 어디 있는지 쉽게 찾을 수 있다. 주변에 있는 조개껍데기나 해조류들을 주워서 입구에 잔뜩 쌓아올려 두기 때문이다. 집 입구를 이렇게 꾸며둔 이유는 좋아하는 먹이인 작은 생물들이 쉽게 다가오도록 하기 위해서다. 흙 위에 구멍이 뚫려 있으면 다들 그 구멍을 피해서 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털보집갯지렁이는 여러 가지 물건을 쌓아놓고 서식굴 입구가 아닌 것처럼 위장해 둔다. 그리고 굴속에 숨어 있다가 먹이가 지나간다 싶으면 밖으로 튀어나와서 잽싸게 낚아챈다.

 이 생물이 갯벌 건축왕으로 불리는 이유는 다른 생물과 함께 살기 때문이다. 갯벌 생물 대부분은 서식굴 하나에 혼자 사는데 털보집갯지렁이는 주로 ‘옆길게’와 함께 산다.<사진 3>

 이들이 함께 사는 이유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구본주 연구원은 옆길게가 털보집갯지렁이의 배설물을 먹으며 함께 사는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앞으로 연구를 통해 털보집갯지렁이는 옆길게에게 어떤 도움을 받고 함께 사는지 밝힐 예정이다.

 구본주 연구원은 “서식굴을 연구하면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갯벌 생물의 정보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갯벌 환경을 보호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혜림 어린이과학동아 기자 pungnibi@donga.com
#털보집갯지렁이#옆길게#갯벌#가재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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