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김변호사의 쉬운 법이야기]“막강한 권한 가진 대통령도 헌법은 꼭 지켜야 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대통령 권한과 책무

2013년 2월 25일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리고 있다. 19대 대통령 취임식은 이전처럼 큰 규모가 아니라 최소한의 형식만 갖춰 치러지고 새 대통령은 곧바로 업무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DB
2013년 2월 25일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리고 있다. 19대 대통령 취임식은 이전처럼 큰 규모가 아니라 최소한의 형식만 갖춰 치러지고 새 대통령은 곧바로 업무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DB
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하던 고교 시절, 가장 중요했던 과목은 누가 뭐래도 국어 영어 수학이었습니다. 그런데 법과대학에 진학해 보니 법학에도 중요한 과목이 세 개 있었습니다. 사람의 사적인 재산관계나 가족관계를 규율하는 민법, 무엇이 범죄이고 그것에 어떤 형벌을 내릴 것인지를 규정한 형법, 국가의 통치 조직과 통치 작용의 기본 원리 및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인 헌법. 이 세 가지 법을 법의 기본이 되는 중요한 법이라 하여 기본삼법(基本三法)이라 일컫습니다.

그런데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 실무를 해 보니 헌법은 찾아볼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흔히 일어나는 갈등은 대부분 사인(私人·개인 자격의 사람) 간에 벌어지는 민사적인 분쟁이거나 형사소송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기본권 보장과 국가통치 체제의 기초에 관한 근본규범인 헌법을 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난겨울부터 올봄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초유의 사태들은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는 헌법의 존재를 여실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어제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에 따른 ‘장미대선’이 치러졌습니다. 오늘은 우리의 삶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헌법 이야기, 그중에서 대통령의 권한과 책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 그리고 그보다 더 막중한 책무에 대한 이야기가 오늘의 핵심 주제입니다.

○ 최고의 권력을 갖는 대통령


우리나라는 대통령제 형태의 정부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元首·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이자 행정부의 수반(首班·우두머리)입니다(헌법 제66조 제1항, 제4항).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람, 최고 권력자라는 의미입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액턴 경이 한 이 말은 애석하게도 동서고금, 어느 시대의 역사를 살펴봐도 사실로 확인되는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 헌법은 권력을 여러 헌법 기관에 나누고,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통치체제를 설계한 것입니다. 헌법에서 대통령의 권한과 책무를 규정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이와 같은 견제와 균형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은 외국과 조약을 체결·비준하고, 외교 사절을 신임·접수 또는 파견하며 선전포고를 할 수 있습니다(헌법 제73조). 또한 주요 정책에 대하여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고(헌법 제72조),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 등 국가기관의 장을 임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헌법기관들의 정상적인 작동을 기대하기 어려운 비상 상황에서 대통령은 헌법 수호를 위하여 예외적으로 법률의 효력을 갖는 긴급명령이나 긴급처분을 할 수 있으며(헌법 제76조), 전쟁 상황과 같은 국가 비상사태에서는 계엄을 선포할 수도 있습니다(헌법 제77조).

○ 대통령 견제하는 국회

그러나 이런 긴급조치나 긴급명령은 지체 없이 국회에 보고한 뒤 승인을 받아야 하며 계엄 선포 역시 국회가 재적 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해제를 요구할 경우에는 해제해야 합니다. 또한 대통령은 사면(赦免·형벌의 면제 조치)·감형(減刑·형벌을 줄여주는 조치)·복권(復權·형의 선고에 따라 잃었던 자격과 권리를 회복함)을 명할 수 있지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야 합니다. 특히 일반사면(특정한 범죄를 저지른 모든 사람의 형을 면제하는 사면)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헌법 제79조).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으로서 국군통수권(군대를 지휘하고 통솔할 권한)을 갖고, 정부 조직의 구성원인 공무원을 임명하거나 파면할 수 있으나 이 역시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야 합니다(헌법 제74조 제1항, 헌법 제78조). 대통령은 대통령령을 발동함으로써 입법 활동도 할 수 있으나 입법부인 국회의 고유 권한을 침범하지 않도록 국회가 제정하는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한 사항이나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한합니다(헌법 제75조).

그 밖에도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 ‘형사상 불소추 특권’을 갖지만(헌법 제84조) 이 특권은 재직 중에만 인정되고, 형사상 불소추 특권에 불과하므로 재직 중이라도 탄핵소추는 가능합니다.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 이 국가 최고 권력자에게 부여된 헌법적 권한이 막강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권력의 뿌리는 헌법이며,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순간 더 이상 적법한 권한의 행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번 대통령 탄핵 과정을 통해 이미 무겁게 경험했습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대통령이 취임할 때 헌법 제69조에 따라 선서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신임 대통령의 이 선서가 재임 기간 내내 제대로 지켜지는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김미란 변호사 법무법인 산하
#장미대선#대통령 권한#국회#헌법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