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서울 우정국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에서 만난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58·사진)은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 체포 직후 “조계사를 걱정스럽게 지켜본 국민들께 죄송하고 앞으로 잘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조계종 총본산인 조계사의 주지이자 총무원 서열상 2인자 격인 총무부장을 겸임하고 있는 지현 스님은 “제 말이 종단 입장으로 해석될 수 있어 그동안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은 물론 언론과도 일절 접촉하지 않았다”며 입을 열었다.
지현 스님은 이날 동아일보 기자 등과 함께 한 위원장의 체포 과정을 TV 중계로 지켜봤다. 지현 스님은 “일단 이번 사태는 수습됐지만 앞으로가 중요하다”며 “이번처럼 충분한 검토 없이 누군가 사찰에 들어오고, 눌러앉고, 정치투쟁을 벌이면 대책이 없다. 엄격한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매뉴얼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모으겠다는 입장이다.
▼ “몸싸움때 옷 벗고는 신도 폭력으로 몰아” ▼ 한 위원장이 자진 퇴거 약속을 거듭 어기고, 조계사 신도회를 폭력집단으로 매도한 과정을 얘기할 때 스님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스님은 “지난달 30일 자진 퇴거 약속을 어겨 신도회와 한 위원장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는데 (한 위원장이) 스스로 옷을 벗고 팬티 바람으로 버텨 연로한 여성 보살(신도)들이 기겁을 하며 큰 충격을 받았다”며 “그런데 이 과정을 도리어 조계사 신도회 폭력으로 몰면서 진상 조사를 주장할 때는 기가 막히더라”고 했다.
이어 “그래도 원만한 수습을 위해 나 자신과 종무원들에게 참을 인(忍), 인내를 거듭 강조했는데, 한 위원장이 페이스북에 ‘유폐’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자신을 보호해준 종단 모습이 자본과 권력의 행태와 같다고 비난할 때는 수행자 입장에서도 참기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스님에 따르면 한 위원장과 합의한 조계사 퇴거 시한은 최초로 지난달 30일에서 2차 민중 총궐기 대회 이후인 6일, 다시 9일로 바뀌었다. 한 위원장이 합의했지만 이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지현 스님은 “한 위원장 스스로 노동자를 대표하는 ‘장수’라는 표현을 썼는데, 정말 장수답게 신의를 지키고 당당하게 행동했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 박수를 받지 않았겠느냐”고도 했다.
이날 지현 스님을 만나는 자리에는 총무원 간부 스님 서너 명도 드나들며 TV 중계를 함께 봤다. 이들은 한 위원장이 관음전에서 나와 조계사 대웅전-총무원으로 가는 길 양쪽에 종무원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보고 “큰스님도 아닌데 저렇게까지 배려해야 하나“ “혹시 발생할지도 모를 사고에 대비하는 것 아니냐”등의 얘기를 나눴다. 또 “대웅전 한가운데 문인 어간(御間)으로 한 위원장이 들어가면 안 된다”며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한 위원장이 조계사를 정치투쟁의 장으로 삼았기 때문인지 간부 스님들의 반응은 차가운 편이었다. A 스님은 “(한 위원장이) 조계사에 유폐됐다고 주장했는데 워낙 거짓말을 많이 하니 출가시켜 절에 살면서 죄 지은 것 갚게 해야 한다”고 했고, B 스님은 “한 위원장과 수시로 만나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조계사 부주지 담화 스님은 나중에 한 위원장 면회라도 가야겠다”고 했다. C 스님은 “관음전에서 일단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면 고개 숙이고 합장하면서 불편함을 끼친 사람들에게 사죄의 예를 취하는 게 맞는데, 주먹질하고 손부터 먼저 흔들고 있다”며 “저렇게 행동하니 미운털이 박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현 스님은 사태를 마무리 짓는 조계사의 공식적인 입장에 대해 “상황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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