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4일 ‘민중 총궐기’ 집회 때 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혼수상태로 치료를 받던 농민 백남기 씨(69)가 25일 끝내 숨졌다. 백 씨가 칠순 생일을 맞은 다음 날, 병원에 입원한 지 316일 만이다. 시위 참가자가 경찰 진압 과정에서 사망한 것은 2009년 용산 참사 후 7년 만이다.
서울대병원 의료진은 이날 “오후 1시 58분 백 씨가 급성신부전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백 씨의 자녀, 부인 등 가족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임종을 지킨 것으로 전해졌다.
전남 보성군에서 농사를 짓던 백 씨는 쌀 수매가 인상 공약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상경해 집회에 참여했다. 그는 1992년 한국가톨릭농민회 부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백 씨의 사망으로 진보진영 시민단체와 경찰 사이에 과잉진압 논란 및 책임 공방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는 사건 직후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백남기대책위)’를 꾸리고 경찰의 과잉진압을 주장하며 서울대병원 앞에서 장기농성을 이어 왔다. 또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미수”라며 당시 강신명 경찰청장과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7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국가와 강 전 청장을 상대로 2억4000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제기했다. 하지만 경찰은 물대포 살수와 백 씨 부상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불명확하다며 과잉진압을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은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26일 백 씨의 시신을 부검하기로 했다. 그러나 백남기대책위 측은 “사망 원인이 ‘물대포 직사(直射)’로 명백한 상황에서 부검을 하는 것은 국가 폭력에 의한 살인이라는 본질을 은폐하고 물타기를 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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