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연초부터 기업경영 참여를 위해 부쩍 속도를 내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이달 1일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에 대해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사내이사가 횡령, 배임 혐의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즉시 사퇴하도록 회사 정관을 변경하라는 주주제안을 하기로 한 것이다. 정관 변경은 경영권 참여 방안 중 가장 수위가 낮은 것이지만 국민연금이 투자하는 기업의 경영에 참여한 첫 사례여서 재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임원 선임·해임, 정관 변경 등에 개입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국민연금이 대기업 오너를 감시·견제하는 것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그간 일부 대기업 오너들은 비리나 내부 갑질 논란으로 사법 처리를 받거나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 적이 종종 있었다. 오너 갑질은 피해자에게 많은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주고 국민적 공분을 산다는 점에서 하루빨리 근절돼야 할 구태다. 한진그룹도 조양호 회장의 부인 이명희 씨의 폭행 혐의를 비롯한 일가의 갑질 논란으로 지난해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참여한다면 오너들의 부적절한 행태로 발생하는 리스크를 줄이거나 예방할 수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최소한의 경영 참여로 오너 리스크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도 기업 경영 참여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은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에 과도한 입김을 행사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위원의 과반수가 회의에 참석하고 과반수가 찬성하면 안건이 의결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런데 현재 기금운영위원 20명의 구성을 보면 위원장인 복지부 장관 등 정부 인사 6명을 포함해 10명이 넘는 위원이 친정부 성향으로 보인다. 청와대나 정부의 의중이 결정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은 구조인 것이다.
반면 해외 연기금들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도 정부의 영향력을 차단할 수 있는 방어막을 갖고 있다. 캐나다에선 정부의 잦은 간섭으로 캐나다공적연금이 고갈 위기를 맞자 ‘정부 정책 목표와 관계없이 오로지 연금 가입자의 이익만을 위해 투자한다’고 규정한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법을 1997년 제정해 연금 운용의 독립성을 보장했다. 일본 공적연금은 후생노동성의 감독을 받지만 의결권 행사를 외부 기관에 위탁한다.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우리나라에서 국민연금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의 존재 이유와 목표는 더욱 명확해진다. 644조 원에 이르는 기금을 잘 불려서 국민들에게 더욱 풍족한 노후자금을 안정적으로 지급하는 일이다. 이는 국민들이 국민연금에 가장 크게 바라는 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해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은 이런 국민의 기대와는 너무나 많이 동떨어졌다. 지난해 국민연금은 마이너스 1.5% 안팎의 잠정 수익률을 나타내 10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돈을 벌어도 시원찮은 판에 국민이 약 석 달간 납부한 보험료에 해당하는 10조 원 정도를 까먹었다. 1988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의 연평균 누적수익률 5.37%에도 크게 미달하는 저조한 실적이다.
국민연금의 주인은 국민이다. 기금운용위원회도, 청와대도 아니다. 고객인 국민만 바라보고 수익률 극대화에 온 힘을 쏟는다면 국민은 본분에 충실한 국민연금에 박수를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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