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회관에선 사립유치원 회계비리 의혹을 다루기 위한 긴급 당정청 협의회가 열렸다. 일요일임에도 더불어민주당에선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청와대에선 김수현 대통령사회수석비서관과 이광호 교육비서관이, 정부에선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등이 총출동했다.
한편 같은 시간 자유한국당 의원 등 보수진영 수백 명은 국회 본관 앞 계단에 모여들어 서울교통공사 등 공공기관 친인척 채용비리 의혹 규탄대회를 열었다. 한국당은 당원 명의의 결의문을 내고 “친인척 채용비리는 취업에 절규하는 청년들의 일자리를 도둑질하는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 박원순 시장은 고용세습 청년일자리 탈취 사건에 대해 즉각 사죄하라”고 요구했다.
사립유치원의 회계부정과 공공기업의 채용비리는 정파를 떠나 국민의 공분을 자아내는 이슈. 하지만 여야는 유독 한쪽으로만 치우친 채 이슈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여야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자연히 협치가 거론될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 민주당 “한국당, 유치원 비리에 일언반구 없어”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11일 국감에서 최근 5년 동안의 시도교육청 감사로 전국 사립유치원 1878곳에서 5951건의 비리가 적발됐다며 유치원 실명을 폭로했다. 일부 원장은 교비로 성인용품과 명품 백을 사기도 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닷새 후 국무회의에서 “국민이 아셔야 할 것은 모조리 알려드리는 것이 옳다”며 특단의 대책을 주문했고, 여당도 매일 관련 논평과 브리핑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당은 사립유치원 이슈와 관련해 당 차원의 논평을 한 번도 안 냈다.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이 20일 ‘중요한 문제를 파헤친 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다만 유치원 회계 관리 등에) 국가가 감독과 통제를 독점하거나 주도해서는 안 된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것이 유일한 지도부 반응이다.
한국당 내부적으론 여당이 제기한 사립유치원 비리 의혹을 따라가면 이슈 주도권을 놓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사학재단과 관련된 의원이 많다 보니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말도 있다. 사립유치원 비리가 사학재단 전반에 대한 이슈로 확대될 것을 경계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민주당 박경미 원내대변인은 21일 “이삭줍기에라도 나서야 할 자유한국당 등 일부 야당은 비리 사립유치원 건에 대해서는 유독 일언반구도 없다”고 꼬집었다.
○ 한국당 “문 대통령과 박 시장 사죄해야”
그 대신 한국당은 공공기관 채용비리에 다걸기(올인)하는 모습이다. 한국당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교통공사에 이어 문 대통령의 정규직 전환 1호 약속 기관인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국토정보공사에 대해서도 친인척 채용 의혹을 제기했다. 당 홈페이지에는 ‘고용세습 파헤치기 국민 제보센터’도 만들었다. 한국당은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과 공조해 주중에 국정조사를 공식 요구할 방침이다. 김용태 사무총장은 “교통공사 정규직 전환자 중 친인척 노조 관계자가 (보고한) 108명에서 1명이라도 더 나오면 박 시장이 물러나라. 안 나오면 의원직을 내놓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민주당은 한국당의 공격을 ‘전형적인 정치 공세’로 규정하며 이슈에서 한발 빼고 있다. 유력 대권주자인 박 시장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는 데다 전통적 지지 기반인 민주노총 등 노동계와의 관계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이날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열고 “권력의 힘으로 조직적인 채용비리가 이뤄진 것은 현재까지 파악된 바 없다”며 “한국당이 국감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채용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을 비판한다면 고용 문제에 대한 인식이 천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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