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일민미술관 현수막 관심집중… 지금 한국사회 민낯에 딱 맞는 표현
民 도덕의 타락, 官 민주 가치 외면… 이대로 무너지면 돌이킬 수 없어
추한 현실 각성이 변화의 첫걸음
서울 세종로 사거리의 일민미술관에 등장한 대형 현수막이 요즘 큰 인기다. 흰 바탕에 달랑 ‘엉망’ 두 글자가 담긴 글판인데 인스타그램 등에서 인증 사진과 더불어 숱한 반응을 쏟아낸다. “그래, 요즘 참 엉망이다” “완망(완전히 망함) 아니면 뭐든 괜찮지” 같은 피드백에, ‘오늘 망했다’처럼 o과 ㅁ을 활용한 말놀이도 즐긴다. 대체 뭔 일이냐고 미술관의 조주현 학예실장에게 물어 보니 “엉망이란 단어에 세간의 궁금증과 화제가 증폭된 것 같다”는 대답이다. “특히 젊은층이 본인의 현재 상황을 투영하면서 미술계를 넘어 격한 호응을 얻고 있다”는 말이었다.
‘엉망’은 현대미술작가 Sasa의 개인전 제목이다. 안내문을 보면 ‘작가가 20여 년 동안 편집증적으로 모은 물건들을 이용해 자신이 살아온 시대와 문화를 통찰적으로 엮어내는 아카이브에 기반한 전시’라고 한다. 즉, 잡다한 수집품부터 일상의 소소한 기록까지 작가의 사적인 빅데이터를 집대성했다는 의미다. 전시 맥락과 별개로 ‘엉망’이란 표현에 대중이 공명한 이유는 대한민국의 현재가 그러하기 때문일 터다. 국민적 공분을 치솟게 하는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연속극처럼 터져 나오는 눈앞의 현실 말이다.
가령, 어려울 때 가족이 힘이 된다는 상식을 가족이기주의적 도덕불감증으로 변질시킨 공기업의 고용세습, 친인척 채용비리가 그렇다. 직장을 가족공동체로 만들려고 작심한 듯 서울교통공사 등에서 벌어진 사례에서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본다. 자신들이 비판한 재벌 행태를 닮아가는 것일까. 사회적 약자 보호니 하는 온갖 입발림도 크고 작은 집단이 저마다 기득권을 굳히는 수단으로 귀결되는 현실이다. 거기에 대고 여당 대표는 ‘가짜뉴스’ 운운하며 평소 하던 대로 정치 공세로 몰아친다.
도덕적 타락은 사립유치원 비리 백태에서도 꼬리를 드러냈다. 세금을 받아 명품 가방, 성인용품을 사들인 유치원장, 마치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인 양 수박 1통을 100명에게 나눠준 급식신공을 발휘한 유치원 등. 학부모의 분노는 하늘을 찔러도 정작 그 대상은 태연자약.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사립유치원, 교육공무원보다 훨씬 깨끗해’라는 입장문에서 ‘거짓뉴스’라고 받아쳤다.
공(公)은 또 어떤가. 민(民)의 일탈을 압도하고 선도한다. 보수와 진보 매체도 시민단체도 줄줄이 언론자유,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반발하는 사안이 잇따른다. 통일부 장관은 15일 남북 고위급 회담 취재단에서 탈북민 출신 기자를 배제해 기본권과 언론자유라는 민주 사회의 핵심 가치를 짓밟았다. 그들이 규탄해온 독재정권과 뭐가 다른가. 심지어 “똑같은 상황이 온다면 같은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뭘 위한 남북 대화이고 협력인가. 어떤 상황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와 원칙이 있다. 이를 희생하고 얻은 결과라면 어떻게 포장해도 본질 없는 허깨비일 뿐.
법무부 장관도 빠질세라 한몫을 한다. 16일 가짜뉴스에 대한 엄정한 대처를 지시하면서 “고소 고발 전이라도 수사에 적극 착수하라”고 독려했다. 그래서 너도나도 불리하면 가짜뉴스부터 들먹이나 보다. 집권세력의 규제 강박에서 수상한 기운이 감지된다. 예전에 맹위를 떨친 ‘유언비어 엄단’의 신종 패러디처럼 보이기도 한다. 권력에 반(反)하는 모든 발언에 재갈을 물리고 싶은 것은 권력의 유구한 본성인지도 모른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렇듯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줄지어 벌어지는 것 자체가 초현실적이다. 공정과 정의를 내세우는데 불신과 반목이 과거를 뺨칠 정도로 깊어간다. 기득권으로 편입된 계층은 도덕적 타락에 물들고, 기득권 밖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은 나날이 깊은 생활고로 추락해 간다.
이 상황을 바꾸려면 추한 현실을 직시하고 반성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겠으나 그런 조짐은 안 보인다.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진 사회의 현주소를 정확히 인식하고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일이 정치의 공간에서 이뤄져야 하겠으나 사실상 기대난망. 그 사이 공동체가 지켜야 할 도덕적 민주적 가치에 금이 가고 있다, 이제는 자발적으로 ‘각성’할 때도 됐건만, 거리에는 온통 이기심의 고함소리뿐이다.
‘엉망’이란 말이 딱 맞는 총체적 현실에도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에 희망의 메시지를 띄운다. ‘우리 하루가 엉망이 아니라 희망이 되길’ ‘지나간 날은 엉망이었다. 살기 위해 늘 여유를 갈망한다’. 그 꿈을 현실에서 응답하는 것, 바로 리더의 책무이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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