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연세대 등 로스쿨 학생회 “전원 자퇴-학사일정 거부”
법무부 “폐지 4년 유예” 파장
법무부가 3일 2017년 폐지 예정인 사법시험을 2021년까지 존치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사시 존폐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의식한 결과다. 그러나 사시 존치를 요구하는 국민 여론을 반영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일각에선 다음 정권으로 최종 결론을 미룬 ‘땜질식 처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당장 대법원도 “법무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고 반발하고 나서 논란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은 전공을 등한시하고 고시에만 매달리는 대학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개선하고 ‘고시 낭인’을 줄이자는 취지로 2009년 출범했다. 사시는 로스쿨 제도 도입으로 2016년 2월을 끝으로 1차 시험이 없어지고, 2017년 12월 31일에는 완전 폐지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로스쿨 학비가 비싸 ‘가진 자를 위한 제도’라거나 저소득 소외계층의 신분 상승 통로가 막혀 기회의 평등을 되레 악화시킨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최근 국회의원 등 일부 사회지도층 자녀의 로스쿨 입학과 취업 과정에서 특혜 논란이 불거지면서 불신 여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법무부가 전문 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5.4%가 사법시험 유지에 찬성 의견을 보인 것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사시 폐지 유예 시한을 2021년으로 정한 것은 ‘로스쿨-변호사시험’ 제도 시행 10년이 되는 해여서 어느 정도 제도가 정착될 수 있다는 점과 사시 폐지에 따른 대안 마련에 필요한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는 게 법무부의 설명이다. 존치와 폐지 어느 한쪽으로 당장 결론을 내기보다는 로스쿨 제도가 정착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겠다는 의도가 크지만 결과적으로는 사시 존치론 쪽이 당장의 실익을 챙겼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문제는 법무부의 이번 발표가 법조계 내부에서도 충분한 사전 조율이 이뤄지지 않은 데다 4년간 사시 합격자 수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법무부 발표가 논란의 종식이 아니라 새로운 논란의 시작을 의미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날 “국민적 여망을 반영해 사시를 존치하기로 한 정부의 입장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국 25개 로스쿨은 “법무부가 떼쓰는 자들에게 떠밀려서 사법시험 연장이라는 미봉책을 내놓았다”고 비판 성명을 냈다. 서울대, 연세대, 서강대 등 로스쿨 학생회는 이날 학생 전원 자퇴서 작성, 학사일정 전면 거부 등을 의결했다.
대법원도 “4년 동안 사법시험 폐지를 유예해야 한다는 판단에 대한 사전 설명이나 자료를 제공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대법원은 “사시 폐지 유예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4년이라는 기간이 적정한지는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신중한 검토를 거쳐 적절한 기회에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4년 후에도 ‘로스쿨 체제’가 유일한 사법인력 양성 수단으로 자리 잡을지는 미지수다. 법무부는 유예기간 동안 사시 폐지에 따른 대안으로 사시와 유사한 별도 시험을 만들어 합격할 경우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더라도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언급했다. 로스쿨에 갈 형편이 안 되는 사람에게 변호사시험을 치를 기회를 주겠다는 것인데, 이는 사실상 또 다른 사법시험을 만드는 것이다. 법조계 안팎에선 “2021년에도 올해와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온다.
▼ ‘사시존치’ 법률개정案 6건… 2년째 소위 통과 못해 ▼
법무부 “신속한 법률 개정 위해 계류 법안에 의견 첨부할 것”
법무부 발표대로 2021년까지 사법시험의 수명을 연장하려면 우선 ‘2년 후 폐지’를 규정한 변호사시험법 조항이 국회에서 개정돼야 한다. 법무부는 신속한 법률 개정을 위해 별도의 개정안을 내지 않고 국회에 계류 중인 기존 개정안에 반영할 방침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변호사시험법 개정안’은 6건이나 되지만 2년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 의원들이 제각각 발의한 이 개정안들은 공통적으로 2017년 사시 폐지를 규정한 부칙 제2조 및 제1·4조 일부를 삭제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법무부는 정부 입법 형태가 아닌 법사위 논의 과정에서 대안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법무부는 응시생들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현행법상 내년 2월 마지막 1차 시험 전까지 최대한 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3일 여야 모두 신중한 반응을 보여 국회 통과가 신속히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 주는 게 부담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법사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은 “로스쿨이 있는데 공개적으로 사시 존치를 주장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임내현 의원은 “법무부와 교육부의 의견이 다른 만큼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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