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법원행정처가 31일 추가 공개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문건 196개 중 상당수는 상고법원 도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법원행정처는 2015년 5월 작성한 문건에서 ‘상고법원 안은 다른 현안과 비교 불가한 절체절명의 과제’ ‘CJ(대법원장의 이니셜·양승태 전 대법원장 의미함) 최대 역점 사업이자 사법부의 가장 중차대한 추진 과제’라고 밝혔다.
○ 의원 ‘접촉 루트’로 대법관 지정
문건 중에는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대(對)국회 전략’ ‘야당 대응 전략’ ‘의원별 대응 전략’ 등 당시 법원행정처가 사실상 국회를 상대로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이 높은 정황이 많이 나온다.
‘법사위원 대응 전략’(2015년 3월 작성) 문건은 2015년 4월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상고법원 관련 공청회를 앞두고 작성됐다. 이 문건의 ‘의원별 맞춤 전략’ 항목에서 법원행정처는 법사위 의원 16명을 상고법원에 대한 ‘찬성’ ‘유보’ ‘반대’ 세 그룹으로 분류해 의원별 특징과 대응 전략, 지역구 현안을 상세히 정리했다. 또 각 의원과 친분이나 학연이 있는 대법관이나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누구인지를 파악해 ‘접촉 루트’로 지정했다.
문건에 ‘유보’로 분류된 여당 김재경 의원(경남 진주을)의 지역구 현안에는 ‘진주지원 이전’이 포함돼 있다. 법원행정처가 이를 대가로 상고법원 찬성을 설득했을 가능성이 있는 대목이다. 또 당시 법사위원장이었던 이상민 의원(대전 유성을)도 ‘유보’로 분류됐는데, 그의 지역구 현안은 ‘특허 관할 집중 법안 통과(4월 국회 예상)’라고 정리돼 있다. 특허권 침해 소송 항소심 관할을 대전 특허법원으로 집중하는 내용의 법안(이 의원 발의)이 4월 국회에서 처리될 것이라는 의미다.
또 ‘한명숙 판결 후 정국 전망과 대응전략’(2015년 8월 작성) 문건에 따르면 대법원이 한명숙 전 총리에게 유죄 확정 판결을 내린 뒤 법원행정처가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내 친노(친노무현)와 비노(비노무현) 간 상고법원에 대한 이견을 감안해 대응 전략을 세웠다. 친노 성향 지도부는 판결에 반발해 법원에 강력 대응 기조를 유지했고, 비노 진영은 강경 대응 시 역풍을 우려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법원행정처는 ‘투 트랙 대응방안’을 검토했는데 친노에 대해선 ‘일정 기간 냉각기가 필요하다’고 분석했고, 비노인 중진 의원들에게는 ‘적극 접촉을 통한 설득과 관계 복원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 ‘일반 국민들 이기적’ 비난하며 대국민 홍보
2014년 9월 작성된 ‘(청와대) 법무비서관실과의 회식 관련’ 문건에는 ‘일반 국민들은 (중략) 내 사건은 대법원에서 재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는 국민들을 비난한 것이다.
‘상고법원 관련 신문·방송 홍보전략’(2015년 6월 작성) 문건의 ‘구체적인 홍보방안 로드맵’ 항목에서 법원행정처는 2015년 6월 한 달간 신문 기획기사와 칼럼, TV와 라디오 방송 토론회 추진 계획과 예정된 일정을 시간 순으로 정리했다.
특히 언론 홍보 전략은 조선일보에 집중됐다. 당시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관련 문건은 ‘조선일보를 통한 상고법원 홍보전략’ 등 총 9개다.
또 다른 문건에는 상고법원 ‘대세론’을 지역신문 등에 확산시킨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이 문건에는 지역 일간지 기사나 칼럼을 통해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해당 지역구 법사위원 5명을 압박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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