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사법 농단’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검찰 수사가 오늘로 100일째를 맞이했다. 그간 검찰과 법원은 ‘영장’을 둘러싸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여왔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날은 지난 6월18일 서울중앙지검이 재판 거래 의혹 등 고소·고발 사건을 특수1부에 배당한 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애초 사건은 공공형사수사부에 배당돼있었다. 그러나 검찰이 사건을 특수부에 재배당하자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가장 날카로운 칼을 꺼내 들었다”며 강도 높은 수사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검찰은 먼저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신속하게 수사를 전개해 나갔다. 검찰은 배당 하루 만에 법원행정처에 컴퓨터 하드디스크 원본 등 관련 자료를 제출해줄 것을 서면으로 요청했다. 대법원 자체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410건의 문건 이외에도 수사에 필요한 자료는 모두 확보하겠다는 방침에서다.
그러나 법원은 일부 자료를 제출하면서도 검찰이 강하게 요청했던 하드디스크 원본 등은 제출하지 않았다. 공무상비밀에 해당되지 않고, 구체적 관련성이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만 자료를 제출할 수 있다는 게 법원의 입장이었다.
이후 검찰은 법원으로부터 자료 일부를 제출받으며 문건에 등장하는 관계자, 변호사 등을 참고인으로 불러 상황을 면밀히 살펴봤다. 법원의 자료 제출 기준에는 동의하지 않는 입장이었지만, 이번 사법부 수사가 ‘유례없는’ 경우인 만큼 신중히 전략을 짤 수밖에 없는 모양새였다.
검찰은 수사 본격 착수 한 달이 된 지난 7월말 처음으로 강제수사에 나섰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임 전 차장이 숨긴 것으로 알려진 USB(이동식 저장장치)를 확보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 처장(전 대법관),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 당시 행정처 주요 관계자들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영장은 모두 기각했다. 이후에 검찰은 재차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으로부터 연이어 ‘퇴짜’를 맞는 등 의혹의 핵심에 대한 강제수사 시도는 연신 실패했다.
검찰과 법원 사이 갈등은 고조됐다. 변호사 성공보수 약정 무효 정황, 강제 징용 사건 등 재판 거래, 부산 스폰서 판사 징계 무마 등 양 전 대법원장 시절 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된 각종 의혹이 연이어 불거졌지만, 압수수색은 좀처럼 법원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당시 한 검찰 관계자는 “이렇게 영장이 기각된 사례가 있었는가.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발부됐었다”고 작심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검찰은 전·현직 고위 법관들과 실무급 역할을 담당한 중견급 판사들을 다수 불러 조사하는 등 저인망식 수사로 방향을 선회했다. 압수수색으로 기초 자료를 확보하는 게 쉽지 않음에 따라 관련자 개개인의 진술 및 증거를 확보함으로써 윗선 수사에 나아가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다수 유의미한 진술도 다수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대법원장, 이 전 처장, 임 전 차장 등의 연루 정황을 확인할 수 있는 진술이 전·현직 법관들로부터 다수 나온 것이다.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 시도도 계속해서 병행됐지만, 법원으로부터 연신 기각됐다.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 200여건 중 약 20건에 대해서만 영장이 발부됐다. 10건 중 9건은 기각되고 있는 셈이었다.
이 와중에 유해용(52·사법연수원 19기)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재판 자료 등 기록을 유출하고,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이를 파기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에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이례적으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러한 증거인멸 행위에 대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검찰은 유 전 연구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A4용지 2장 분량의, 2780자가 넘는 장문의 사유를 밝히면서 이를 기각했다. ‘역대급’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이례적인 경우였다.
추석 연휴 기간 검찰과 법원 사이 신경전은 잠시 소강 상태를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검찰은 연휴가 끝난 후 곧바로 수사 상황을 전개해나갈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검찰 관계자는 “사법 농단 수사는 긴 호흡으로 가는 것”이라며 흔들리지 않고 계속해서 수사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다.
검찰은 필요하다면 계속해서 압수수색 및 구속영장을 청구해나갈 계획이다. 이례적인 사유로 구속 위기에서 벗어난 유 전 연구관에 대해서도 영장 재청구를 검토할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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