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좀 더 신중하고 주의 깊게 해서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는 일이 없었어야 했는데, 반성합니다.”
26일 오후 4시 20분경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321호. 5시간 넘게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던 임종헌 전 대법원 법원행정처 차장(59·사법연수원 16기)은 판사에게서 처음이자 마지막 발언 기회를 얻었다. 그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해 “제 생각으로는 법원을 위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려고 했던 것”이라면서도 자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임 전 차장은 미리 자필로 써 온 A4용지 절반 분량의 글을 떨리는 목소리로 읽었다고 한다. 심리를 맡은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사법연수원 28기로 임 전 차장보다 12년 후배다.
이에 앞서 오전 10시 12분경 법원에 도착한 임 전 차장은 “재판하던 곳에서 영장 실질심사를 받게 됐는데 심경이 어떤가”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침묵했다. 임 전 차장은 2012년 8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약 4년 7개월 동안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기획조정실장과 차장으로 근무하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지시를 받아 판사 동향을 감시하고, 대법원 재판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날 영장 실질심사에서 검사 8명과 임 전 차장 측 변호인 5명은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4시 20분경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5시간 넘게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였다. 검찰은 미리 준비한 300여 쪽 분량의 PPT 자료로 임 전 차장의 범죄 사실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구속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임 전 차장 측 변호인은 “직권남용은 정권교체기의 정치보복 수단으로 자주 활용됐다”며 검찰을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언급한 ‘사법농단’이라는 용어를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 전 차장 변호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 때 청와대의 부탁을 받고 전교조 법외노조화 관련 소송에 관여한 것에 대해 “저쪽(청와대)이 손발이 없어 도와준 것뿐”이라고 반박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 소송 등 재판 개입 의혹에 대해 임 전 차장 변호인은 “참고자료를 전달했지만 재판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검찰이 재판 구조를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이) 민사소송에서 왜 전범기업인 피고의 편에 서고, 원고인 100세를 내다보는 사람들이 한을 품고 사는 것을 몇 년이나 끌며 한쪽 말만 듣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황형준 constant25@donga.com·김동혁·허동준 기자
※제작시간 관계로 영장심사 결과를 싣지 못했습니다. 결과는 dongA.com을 참조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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