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법원행정처 대외비 문건 확보
김기춘 차한성 윤병세 회동후 작성
“소송 지연시켜 추가소송 막고 日기업 아닌 재단 만들어 보상”
2013년 12월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을 지연시켜 추가 소송을 막고 일본 기업이 아닌 피해자 재단이 소액의 배상·보상을 하는 시나리오를 검토한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검찰이 확보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 문건 ‘독일의 기억, 책임, 미래 재단 검토(대외비)’(2013년 12월 18일 작성)에 따르면 당시 대법원은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가인 독일 사례를 들어 일제 강제징용 소송 관련 두 가지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이 문건은 당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공관에서 김 실장과 차한성 법원행정처장,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회동한 직후 만들어졌다. A4용지 43쪽 분량의 문건에는 2000년 독일 연방정부와 독일 기업이 참여한 재단이 유럽의 강제징용 노동자들에게 배상을 한 것처럼 한국도 일본 기업과 연대해 재단을 설립한 뒤 보상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두 시나리오의 전제는 추가 소송을 막기 위해 대법원이 재상고 판결을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처음 인정한 2012년 5월부터 3년이 지나 민사소송 소멸시효가 완성되는 2015년 5월 이후로 미루는 것이다.
첫 번째 시나리오의 골자는 보상 입법을 통한 소액 보상이다. 민사소송 소멸시효가 지난 뒤 피해자들의 법률적 청구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독일 재단을 참고해 만들어진 피해자 재단이 보상을 하도록 입법하는 것이다. 피해자 1인당 300만 원 정도가 적정한 보상액으로 제시됐다. 이는 실제 소송에서 피해자가 청구한 1억 원의 3%에 불과한 금액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한국과 일본이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같은 특별협정을 체결하고 그에 따라 만들어진 재단이 소송에 대응하는 방안이다. 강제징용을 한 일본 기업 측에 청구해야 할 손해배상의 대상을 한국 정부나 재단으로 바꾸는 것이다. 문건에는 ‘재단 설립 추진 움직임이 소멸시효의 진행을 중단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과 함께 재단 설립의 밀행성을 강조하는 문구도 있다.
또 문건에는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해도) 국제사법재판소가 우리의 동의 없이 심리할 권한은 없으나 외교 무대에서 우리나라의 입장 약화’, ‘일본 기업에 청구할 사건을 우리 정부나 재단을 상대로 소를 제기하게 하면 훨씬 적은 금액으로 해결 가능’이라는 문구가 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당시 청와대의 요청 내지 압력을 받은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의 입장보다 배상액을 낮추는 데 몰두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7일 차 전 처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피의자로 소환해 이 문건 작성을 지시한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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