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23일 고영한(63·사법연수원 11기) 전 대법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이 사건 수사 이후 전직 대법관이 공개적으로 검찰 포토라인에 선 것은 박병대(61·12기) 전 대법관에 이어 두 번째다.
고 전 대법관은 이날 오전 9시10분께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법원행정처의 행위로 인해 사랑하는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서 대단히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누구보다도 지금 이 순간에도 옳은 판결과 바른 재판을 위해 애쓰시는 후배 법관을 포함한 법원 구성원 여러분께 정말 송구스럽다”며 “사법부가 하루빨리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길 바랄 뿐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사법농단 의혹에 후배 법관과 법원행정처장 중 누구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자세한 내용에 대해선 조사시에 성실히 답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를 받고 있는 고 전 대법관에게 이날 오전 9시30분까지 나와 피의자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다.
고 전 대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인 지난 2016년 2월부터 2017년 5월까지 법원행정처 처장을 지냈다. 그는 지난 2016년 ‘부산 스폰서 판사’ 비위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 사건을 은폐하고 재판에 개입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당시 문모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자신의 스폰서인 건설업자 정모씨의 재판 관련 정보를 유출했고, 이를 확인한 법원행정처가 감사 및 징계 관련 조치 없이 사건을 무마했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이 과정에서 고 전 대법관은 당시 윤인태 부산고법원장에게 직접 연락해 변론을 재개하고 선고기일을 미루도록 요청했고, 윤 원장은 이를 담당 재판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고 전 대법관은 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과 관련해 고용노동부의 재항고 이유서를 대필해줬다는 의혹에 연루된 혐의도 받고 있다. 당시 대법원은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 효력을 정지한 하급심 결정을 뒤집고 고용부의 재항고를 받아들였는데, 당시 주심은 고 전 대법관이었다.
이 밖에도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 확인 행정소송 관여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 및 자료 수집 ▲헌재소장 관련 동향 수집 및 비난 기사 대필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인사모 대응방안 마련 ▲상고법원 등 사법행정 반대 판사 부당사찰 ▲정운호 게이트 관련 영장 및 수사 정보 수집 등 혐의도 받고 있다.
고 전 대법관이 검찰에 소환됨에 따라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전직 대법관 3명 모두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앞서 검찰은 지난 7일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첫 법원행정처장인 차한성 전 대법관을 비공개 조사했고, 지난 19일에는 박 전 대법관을 공개 소환했다.
검찰은 고 전 대법관을 상대로 법조비리 무마 의혹 및 전교조 재판 개입 등 혐의 전반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방침이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고 전 대법관 조사 이후 의혹의 ‘정점’인 양 전 대법원장 수사에 집중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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