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판사보’급이 좌우하는 법관회의 新농단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8일 03시 00분


일본서 법관 10년 차 미만은 판사보… 법관회의에 참여하지도 못해
법관 탄핵 촉구한 한국 법관회의… 15년 차 미만 판사들이 약 60%
선진국처럼 경륜 중시하는 개혁해야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과분하게도 법원개혁안을 만드는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사발위) 위원을 맡고 있다. 난 동의하지 않았지만 사발위는 가칭 ‘사법행정회의’를 설치해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을 넘겨받고, 사법행정회의에는 법원 외부 인사를 포함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사발위 위원 10명 중에는 전국법관대표회의(법관회의) 전 의장이 들어있다. 또 사발위를 돕는 12, 13명으로 구성된 2개 전문분과에는 2명씩의 법관회의 대표들이 있다. 법관회의 전 의장이 전문분과 다수 의견에 거의 동의하고 전문분과를 대변해 사발위 위원들을 설득하려 애쓰는 걸 보면 법관회의 측이 사발위와 전문분과 양쪽을 코디네이트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전문분과는 본래 미국 연방사법회의처럼 법관들로만 구성된 사법행정회의를 제안했다. 하지만 진보 성향 위원들이 외부 인사가 포함된 안을 밀어붙였다. 여기에 사법행정회의를 법관만으로 구성한 뒤 과반을 추천할 권리를 차지함으로써 법원을 좌우하려 한 법관회의의 속셈에 반발한 일부 다른 위원이 가세해 외부 인사가 포함된 안으로 결론이 났다.

사법행정회의가 졸지에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기구가 되다 보니 법관회의는 법관인사위원회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했다. 전문분과는 법관인사위원회의 과반을 법관회의가 추천하는 안을 올렸다. 그러나 인사 대상자가 인사를 하는 꼴이라는 강한 반발이 제기돼 ‘과반’ 표현은 삭제됐다. 본래 ‘법관회의 추천을 포함한다’는 표현까지 없애려 했으나 법관회의 전 의장이 사정을 해 남겨뒀다. ‘농단’은 그 후 벌어졌다. 사발위 채택안을 법원조직법 개정안으로 조문화하는 과정에서 법관인사위원회의 과반을 법관회의가 추천하는 안이 되살아났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 후 처음 지명한 안철상 민유숙 대법관은 비교적 중립적인 인사였다. 그러나 올 6월부터 법관회의 대표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 참석하면서 분위기가 변질됐다고 한 당연직 추천위원이 들려줬다. 추천위 위원 10명 중 6명이 법원 측 인사다. 이들은 법관회의 대표가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하면서 설치면 그게 대법원장 뜻인가 해서 영향을 받기 쉽다. 그나마 7월 임명제청된 김선수 변호사와 노정희 고법 부장판사는 성향을 떠나 능력 면에서 대법관감이라는 대체로 일치된 견해가 있었지만 10월 임명제청된 김상환 고법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앞서 김 변호사를 강력히 밀었던 이 당연직 추천위원까지 거부감이 컸던 모양이다.

법관회의의 최근 법관 탄핵 촉구 결의는 왜 필요했는지 알 수 없어 자충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탄핵은 국회의 권한이다. 굳이 법관회의가 결의하지 않아도 특별재판부까지 구상한 더불어민주당은 필요하면 언제든 탄핵에 착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단 1표 차로, 그것도 의결정족수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통과된 결의는 법원 내부에서조차 분란의 원인이 되고 있다. 느닷없이 지방법원 지원의 지원장 이하 몇몇 법관이 발의한 탄핵 촉구안이 6일 만에 법관회의 안건으로 채택된 사실은 ‘기획 탄핵’이라는 비난의 빌미가 되고 법원회의가 물밑 커넥션에 의해 움직이는 음모론적 조직이라는 인상을 줬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법원제도를 둔 일본만 해도 10년 차 미만은 판사보(補)라고 해서 법관회의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우리나라 법관회의에는 15년 차 미만인 지법 단독판사와 배석판사가 약 60%를 차지한다. 판사로서는 아직 더 배워야 하는 법관들이 법관회의를 좌우하고 그 법관회의가 법원을 좌우하려 들고 있는 게 지금의 사법부다.

사법행정회의의 본래 모델이었던 미국 연방사법회의는 대법원장을 의장으로 13개 항소법원장들과 지방법원에서 뽑은 동수의 대표로 구성된다. 지방법원에서 뽑은 대표는 대부분 지방법원장이다. 우리 식으로 치면 대법원장이 법원장들과 함께 사법행정을 하는 것이지 판사보급이 좌우하는 결의로 사법행정을 하는 것이 아니다.

법관은 국회의원처럼 민주적으로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관료처럼 충원된다. 따라서 법원을 국회처럼 운영할 수 없다. 투표에 의해 지지받는 순이 아니라 연장자 순으로 법원장이 되고 사건도 기계적으로 배당하는 것이 법원의 운영에 어울린다. 우리 법원이 모자란 것이 그런 경륜과 순서에 입각한 관행이다. 법원행정처의 임의든, 법관회의의 임의든 임의를 배제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이 지금 필요한 법원개혁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법원개혁안#사법행정회의#법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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