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박병대(61·사법연수원 12기) 전 대법관과 고영한(63·11기) 전 대법관에 대해 동시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사법부 70년 역사상 전직 대법관을 상대로 한 구속 영장 청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3일 오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구속영장 청구서는 박 전 대법관의 경우 158쪽, 고 전 대법관의 경우 108쪽 분량인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이 법원행정처장 출신인 두 전직 대법관의 신병 확보에 나서면서 ‘정점’인 양 전 대법원장을 향한 수사도 가속도를 낼 것이라는 분석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 범죄사실에 ‘공범’으로 적시돼 있다.
검찰 관계자는 “사법 농단 사건은 특정인의 개인적 일탈이 아닌 업무상 상하 관계에 의한 지시·감독에 따른 범죄”라며 “두 전직 대법관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상급자로서 더 큰 결정 권한을 행사한 분들이다. 따라서 임 전 차장 이상의 엄정한 책임을 묻는 게 이 사건 전모를 밝히고,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양 전 대법원장 아래 사법행정을 지휘한 두 전직 대법관은 재판 개입 등 각종 사법농단 의혹에 깊숙이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들이 ‘핵심 중간 책임자’인 임종헌(59·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거나 지시한 뒤 양 전 대법원장에게 관련 내용을 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박 전 대법관은 지난 2014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장을 지냈고, 그 후임자인 고 전 대법관은 2016년 2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처장직을 수행했다.
검찰은 이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공개 소환한 뒤 연일 강도 높은 소환조사를 벌였다.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은 각각 지난달 19일과 23일에 처음 포토라인에 섰고, 수차례 비공개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조사 과정에서 혐의를 전부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박 전 대법관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실장급 법관이나 실무부서에서 알아서 한 일’이라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 전 대법관은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인정하되 다른 혐의는 전면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법관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을 고의로 지연시키는 등 각종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당시 행정처가 일본 전범기업 측 대리인과 수시로 비밀리에 접촉한 사실을 확인해 범죄사실에 포함시켰다.
특히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전범기업 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관계자와 만났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검찰은 지난달 법무법인 김앤장에서 근무하는 한모 변호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그는 전임 처장인 차한성 전 대법관에 이어 지난 2014년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에서 열린 이른바 ‘소인수 회의’에 참석했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황교안 전 법무부 장관 등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는 강제징용 재판 지연 방안과 처리 방향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전 대법관은 지난 2016년 ‘부산 스폰서 판사’ 비위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 사건을 은폐하고 재판에 개입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당시 행정처가 재판 관련 정보를 유출한 판사의 비위를 확인하고도 감사나 징계 없이 사건을 무마했다는 의혹이다. 고 전 대법관은 이 과정에서 해당 법원장에게 직접 연락해 관련 재판의 변론을 재개하고 선고기일을 미루도록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 확인 행정소송 ▲헌법재판소 내부 사건 정보 및 동향 수집 ▲상고법원 등 사법행정 반대 법관 및 변호사단체 부당 사찰 등 전방위로 의혹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다. 고 전 대법관의 경우 추가적인 재판 개입 혐의도 받는다.
아울러 두 전직 대법관이 특정 법관에 대해 인사 불이익을 가한 혐의도 이번 구속영장에 포함됐다. 검찰은 최근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당시 법원행정처가 특정 법관에 대해 인사 불이익을 가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서’ 문건 등을 확보, 수사를 벌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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