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박병대(61·사법연수원 12기)·고영한(63·11기)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전격 청구하는 등 초강수를 뒀다. 전직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사법 역사상 처음이다. 그간 수사를 통해 두 전직 대법관의 반(反) 헌법적 범죄 혐의가 상당 부분 드러났음에도 당사자들이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어, 영장 청구는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게 검찰 측 입장이다.
3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날 오전 법원행정처장 출신인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 전 대법관은 지난 2014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장을 지냈고, 그 후임자인 고 전 대법관은 2016년 2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처장직을 수행했다. 이들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을 지휘하면서 재판 개입 등 각종 사법농단 의혹을 지시했고 감독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검찰은 이들에 앞서 구속된 임종헌(59·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의 범죄 혐의는 개인적 일탈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사법농단은 업무상 상하 관계에 의한 지시·감독에 따른 것이라는 볼 때 두 처장의 관여 정도가 임 전 차장보다 더 크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검찰은 그간 재판 독립이나 사법부 정치적 중립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대한 헌법 가치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검찰은 이런 점에서 두 전직 대법관의 범죄 혐의는 구속수사가 필요한 중대한 사안이라고 보고 있다.
더욱이 두 전직 대법관이 사실상 책임을 전면 부인해 왔다는 점에서 구속영장 청구는 예견된 것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앞서 검찰은 이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공개 소환한 뒤 연일 강도 높은 소환조사를 벌였다.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은 각각 지난달 19일과 23일에 처음 포토라인에 섰고, 수차례 비공개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박 전 대법관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실장급 법관이나 실무부서에서 알아서 한 일’이라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그는 각종 의혹에 대한 책임은 실무를 담당한 실장급 법관 등에 있다는 취지의 주장으로 책임을 회피하려 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도 알려졌다.
다만 고 전 대법관은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진술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6년 ‘부산 스폰서 판사’ 비위 의혹을 무마했다는 혐의와 관련해서 당시 해당 법원장과 직접 통화해 재판에 개입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외 혐의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더군다나 고 전 대법관은 이번 검찰 수사로 인해 추가적인 재판 개입 정황도 드러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서울행정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에 고 전 대법관이 관여한 정황을 이번 구속영장 범죄사실에 포함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파악지 않았다.
검찰은 기존 혐의 외에 계속해서 추가 범행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혐의를 전부 부인하는 점에 비춰봤을 때 구속수사를 통해 관여 정도를 보다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실무자급인 총책임자인 임 전 차장이 구속된 만큼 바로 그 윗선이었던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한 구속수사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이번 구속영장 청구는 의혹의 정점이라 평가받는 양 전 대법원장 본격 수사에 착수하기 전 거쳐야 할 수 밖에 없는 하나의 ‘관문’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실무진과 양 전 대법원장 사이에 놓여있는 두 전직 대법관의 혐의가 소명돼야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에도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뜻이다.
검찰은 이번 주 중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이들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이 같은 범죄의 중대성과 증거인멸 우려 등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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