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인 양승태(70·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에 대한 검찰 수사 포위망이 점차 좁혀지고 있다.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는 이들의 윗선인 양 전 대법원장 소환을 기정사실화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3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범행에 있어 단순 보고를 받고 지시한 게 아니라 직접 개입했다는 정황을 다수 확인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먼저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지난 2015년 일제 강제징용 소송 재판과 관련해 당시 전범기업 측을 대리했던 법무법인 김앤장 관계자와 직접 만난 정황을 확인했다. 당시 전범기업 측을 대리한 김앤장 소속 한모 변호사와 양 전 대법원장이 수차례 만났다는 것이다.
현직 시절 부장판사 및 법원도서관장 등을 지낸 한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과 친분이 있는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달 한 변호사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정황을 포착하고, 양 전 대법원장이 한 변호사와 직접 만나 재판 지연 과정에 직접 관여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이미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재판 개입에 있어 최종 책임자이자 설계자라는 판단하에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재판 개입의 규모나 성격에 비춰봤을 때 단순 실무자가 벌일 수 있는 범행의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앞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지난 2016년 9월 조태열 전 외교부 2차관과 만나 강제징용 재판과 관련한 외교부 의견서를 논의했다. 이에 앞서 양 전 대법원장은 임 전 차장에게 재판 진행 과정 등 계획을 구체적으로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당시 양 전 대법원장은 보고를 위해 찾아온 임 전 차장과 이민걸 전 기획조정실장에게 ‘대법원장 임기 내에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겠지만, 강제징용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전합 회부 등 구체적인 계획을 설정하고, 이를 외교부에 전달케 하는 등 일련의 사실관계를 종합해 볼 때 강제 징용 재판 개입은 사실상 양 전 대법원장의 직접 지시로 이뤄졌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밖에도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특정 법관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가한 의혹에도 직접 개입한 혐의점을 포착한 바 있다. 검찰은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서’ 문건을 확보했는데, 해당 법관 인사 조치안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V’ 자를 표시하거나 결재한 내용을 확인한 것이다.
검찰은 이 같은 정황을 종합해 봤을 때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직접 조사는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이날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양 전 대법원장을 ‘공범’으로 적시하기도 했다. 앞서 임 전 차장 공소사실에서도 양 전 대법원장은 공범으로 적시된 상태다.
검찰 관계자는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는 당연히 필요하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양 전 대법원 직접 조사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며 “사법 농단 범행이 당시 사법부 체계 아래서 벌어진 일인 만큼 상급자가 더 엄정한 책임을 지는 것은 상식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박병대·고영한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결과에 따라 양 전 대법원장 조사 시기가 결정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두 대법관에 대한 구속 심사는 이번 주 후반께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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