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박병대(61·사법연수원 12기) 전 대법관과 고영한(63·11기) 전 대법관이 오는 6일 구속 위기에 놓인다. 사법부 70년 역사상 전직 대법관이 구속 위기에 놓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4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오는 6일 오전 10시30분 박 전 대법관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다. 고 전 대법관에 대해서는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같은 날 같은 시간 옆 법정에서 구속 여부를 심리한다.
검찰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측은 심사에서 구속의 필요성 여부를 두고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이 받고 있는 혐의가 방대한 만큼 심사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구속영장 청구서만 해도 박 전 대법관의 경우 158쪽, 고 전 대법관의 경우 108쪽 분량인 것으로 파악됐다.
임민성·명재권 부장판사는 각각 심사를 마친 뒤 서면 검토를 거쳐 밤늦게 두 전직 대법관의 구속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애초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한 구속 심사는 무작위 전산 배당에 따라 서울중앙지법 이언학 영장전담 부장판사에게 배당됐다. 그러나 이 부장판사가 회피 신청을 냈고, 이를 법원에서 받아들여 임민성·명재권 부장판사에게 구속 심사를 재배당했다.
이 부장판사는 지난 2010년 박 전 대법관의 배석판사로서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다. 아울러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하면서 박병대·고영한 두 대법관과 함께 대법원에서 일하기도 했다. 이 부장판사의 기피 신청은 심사의 공정성을 위한 취지로 풀이된다. 양 전 대법원장 아래 사법행정을 지휘한 두 전직 대법관은 재판 개입 등 각종 사법농단 의혹에 깊숙이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 전 대법관은 지난 2014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장을 지냈고, 그 후임자인 고 전 대법관은 2016년 2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처장직을 수행했다.
검찰은 이들이 ‘핵심 중간 책임자’인 임종헌(59·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거나 지시한 뒤 양 전 대법원장에게 관련 내용을 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박 전 대법관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을 고의로 지연시키는 등 각종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당시 행정처가 일본 전범기업 측 대리인과 수시로 비밀리에 접촉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에 따르면 그는 전임 처장인 차한성 전 대법관에 이어 지난 2014년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에서 열린 이른바 ‘소인수 회의’에 참석했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황교안 전 법무부 장관 등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는 강제징용 재판 지연 방안과 처리 방향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전 대법관은 지난 2016년 ‘부산 스폰서 판사’ 비위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 사건을 은폐하고 재판에 개입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당시 행정처가 재판 관련 정보를 유출한 판사의 비위를 확인하고도 감사나 징계 없이 사건을 무마했다는 의혹이다. 고 전 대법관은 이 과정에서 해당 법원장에게 직접 연락해 관련 재판의 변론을 재개하고 선고기일을 미루도록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 확인 행정소송 ▲헌법재판소 내부 사건 정보 및 동향 수집 ▲상고법원 등 사법행정 반대 법관 및 변호사단체 부당 사찰 등 전방위로 의혹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다. 고 전 대법관의 경우 추가적인 재판 개입 혐의도 받는다.
특정 법관에 대해 인사 불이익을 가한 혐의도 구속 심사 대상이다. 검찰은 최근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당시 법원행정처가 특정 법관에 대해 인사 불이익을 가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서’ 문건 등을 확보, 수사를 벌인 뒤 이들 영장 범죄사실에 포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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