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를 받고 있는 박병대(61·사법연수원 12기)·고영한(63·11기) 전 대법관에 대한 검찰의 구속수사 시도가 좌절됐다.
두 전직 대법관은 사법농단 실무총괄를 맡아 이미 구속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받아왔다. 연결고리가 끊어지면서 양 전 대법원장 소환을 앞두고 검찰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두 전 대법원장 모두 “공모관계 성립 의문”이라는 구속영장 기각 사유는 6개월 동안 이어져온 검찰 수사의 ‘판’ 전체를 뒤흔들 수 있어 종착점인 양 전 대법원장을 향한 마지막 수사전략의 궤도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서울중앙지법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7일 새벽 박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명재권 부장판사는 고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각각 기각했다.
법원은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한 영장을 기각하면서 공통적으로 공모관계 성립이 의문이며 압수수색 등 검찰 수사가 상당히 진행된 만큼 증거인멸 우려가 낮다는 점을 지적했다. 노모를 모시고 있는 등 도망의 염려가 없다는 점도 영장 기각의 이유가 됐다.
법원은 박 전 대법관 영장기각 사유로 “범죄혐의 중 상당부분에 관하여 피의자의 관여 범위 및 그 정도 등 공모관계의 성립에 대하여 의문의 여지가 있는 점”을 꼽았다. 고 전 대법관에 대해서도 “본건 범행에서 피의자의 관여 정도 및 행태, 일부 범죄사실에 있어서 공모 여부에 대한 소명 정도”를 기각 사유로 설명했다.
즉 검찰이 압수수색 등을 통해 다수 증거를 확보하고도 혐의 입증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판단이다. 특히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혐의 상당 부분에 대해 현단계에서 관여한 것으로 보기 의문이라는 법원의 판단은 검찰 입장에서 뼈아픈 대목이다.
영장기각의 배경으로는 우선 30년 넘는 법관생활로 사법체계의 이해도가 높은 두 전직 대법관들의 적극적 혐의소명이 통했다는 점이 꼽힌다. 기본적 사실관계는 인정하되 위법이 아니었다거나 실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을 내세운 전략이 적중했다.
일례로 검찰은 양승태 사법부와 박근혜정부 청와대 간 밀월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박 전 대법관이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만나 국무총리를 제안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박 전 대법관은 이 제안을 거부했다는 점을 들어 적극 소명에 나섰고, 실제 지명되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고 전 대법관의 경우 자신이 법원행정처장으로 재임하고 있었지만 사법행정권 남용 실무와 지시에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 간 직통루트에서 자신이 배제됐다는 소명 전략이다.
두 전직 대법관의 적극적인 혐의소명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진술과 객관적 증거를 내밀은 검찰 입장에서는 영장기각에 부글부글 끓고 있다. 임 전 차장의 직속상관인 두 전직 법원행정처장은 관여한 것으로 보기 힘들다는 법원 판단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불만이다.
특히 법원행정처장으로서 직접 자필 서명·결재한 문서자료까지 제출했는데 이를 몰랐다거나 임 전 차장이나 하급 실무진에게 떠넘기는 소명이 받아들여진 것은 법원의 ‘제식구 감싸기’란 지적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영장기각 직후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철저한 상하 명령체계에 따른 범죄로서, 큰 권한을 행사한 상급자에게 더 큰 형사책임을 묻는 것이 법이고 상식”이라며 반발했다.
이어 “하급자인 임종헌 전 차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직근 상급자들인 박병대, 고영한 전 처장 모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은 재판의 독립을 훼손한 반헌법적 중범죄들의 전모를 규명하는 것을 막는 것으로서 대단히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탄법원’ 비판과 정치권과 소장 법관들을 중심으로 한 특별재판부 구성 등 움직임과 별개로 검찰은 향후 수사전략을 다시 가다듬어야 하는 과제를 안게됐다.
경위야 어찌됐든 영장이 기각된 만큼 재청구를 위해선 보강수사를 벌여야 한다. 그러나 얼마 간의 혐의보강이 이뤄지더라도 검찰의 혐의소명 전반에 의구심을 보인 법원의 태도를 고려하면 영장을 다시 청구해도 발부될 가능성은 작아보인다.
일각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소환조사를 통해 뒤집기를 노리는 방안도 제기한다. 이 경우에도 임 전 차장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 두 전직 대법관 혐의소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양 전 대법원장을 옭아맬 그물이 헐거워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전체적인 그림을 다시 설계해야 하는 검찰 수사가 해를 넘길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정치권은 사법신뢰 훼손과 민생 차질을 우려해 연내 수사를 강하게 압박해왔지만, 양 전 대법원장 수사를 앞두고 노골적 방탄법원 행태에 검찰의 철저한 수사 명분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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