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오는 11일 공개 소환하면서 수사가 막바지를 향해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 입증에 자신을 보이고 있어 이른바 ‘스모킹건’을 확보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4일 검찰에 따르면 이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양 전 대법원장 측에 피의자 신분 출석을 통보하고 조사를 위한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 소환에 나선 것은 그가 받고 있는 혐의에 관한 수사가 상당히 진척된 데 따른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를 입증할 준비가 어느 정도 마쳐졌다는 판단 하에 더 이상 조사를 미룰 까닭이 없다고 본 것이다.
당초 양 전 대법원장의 소환은 법원행정처장 출신인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 재청구와 보강수사 등을 좀 더 거친 후 이달 말께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두 전직 대법관의 구속영장 재청구 수순을 밟지 않고 곧장 양 전 대법원장을 부르면서 검찰이 결정적인 증거를 찾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검찰 조사에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으로 직행한 것은 핵심 ‘윗선’인 이들의 입을 통하지 않고서도 그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새로운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보고 체계가 처장이 원장에게 보고하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즉 처장이 보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담당자가 직접 양 전 대법원장에게 가서 결재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검찰은 그간 조사를 통해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한 판사들의 진술과 객관적 증거 등 관련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소환하기 전에 추가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을 불러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지난달 7일 구속영장이 기각됐고 이후 검찰은 보강수사에 집중해왔다. 구속영장 기각 후 두 전직 대법관은 검찰 조사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 조사에 앞서 이들을 비공개로 불러 그동안 보강수사한 내용과 양 전 대법원장의 연결고리 등을 추가로 확인하겠다는 계획이다. 검찰은 두 전직 대법관의 영장 재청구 여부도 여전히 고심하고 있다.
또 강제징용 소송 등 청와대와 외교부 등이 개입한 정황이 나온 만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조사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지난달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소환해 박 전 대통령과 양 전 대법원장의 독대 과정 및 민정수석실과 법원행정처 간부들의 접촉 상황 등 관련된 의혹에 대한 조사도 진행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조사는 한 차례로 끝나지는 않을 전망이다. 검찰은 지난해 6월 이후 반년동안 수사를 진행해왔고 재판개입 및 법관 인사 불이익 등 각종 사법농단 의혹에 양 전 대법원장이 깊숙이 관여된 만큼 조사할 분량이 상당하다고 보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이 고령에다가 조사할 내용이 많아 심야조사는 하지 않고 추가 조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도 각각 한 차례 공개소환이 이뤄진 뒤에 여러 차례 비공개 조사가 진행됐다.
검찰은 통상적인 수사 방식에 따른 조사를 하되 전직 대법원장으로서 필요한 예우를 하겠다고 밝혔다. 전직 대법관들이 이미 조사를 받은 만큼 조사실 등 원활한 조사를 위한 준비는 되어 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막중한 업무를 오랫동안 수행했던 분인 만큼 책임있는 말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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