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겠다며 혐의 부인…다른 사람 이야기하듯”
“이지경 만든 게 누군, 괘씸…대법원 회견 부적절”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검찰의 피의자 신분 소환조사를 앞두고 서울 서초구 대법원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2019.1.11/뉴스1 © News1
‘사법농단’ 사건의 중심에 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들어가고 있다… 2019.1.11/뉴스1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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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출신 중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에서 피의자 조사를 받게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사법연수원 2기)이 출석에 앞서 내놓은 입장에 대해 법원 내부에선 반발하는 분위기다.
판사들은 양 전 대법원장의 일부 발언에는 공감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며 유감을 나타냈다.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점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한 지방법원 A판사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양 전 대법원장의 입장문은 딱 예상한 대로”라며 “자신과 관여자들의 혐의는 전면 부인하면서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것에 그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A판사는 “아직 사실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검찰이 완전히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진 않지 않느냐, 현재 여러가지 진술과 문건이 확보된 상태”라며 “양 전 대법원장 자신이 전혀 모르는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시를 받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최소한 강제징용 건에 대해선 사실관계를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며 “이게 부당하지 않다면 외교적 사안에 대해선 청와대와 사법부가 다 같이 협의해도 좋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판사들은 이날 양 전 대법원장이 내놓은 “국민들이 법관을 믿어달라”는 메시지에 대해서도 유감 섞인 의견을 나타냈다.
재경지법 B판사는 “그걸 본인이 하실 말은 아니라고 본다”며 “법원이 만신창이가 된 상황인데 이제 와서 믿어달라고 하면 어쩌나”라며 “묵묵히 일하는 다수의 판사들을 믿어달라고 하는데, 그 판사들을 지금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게 대체 누구냐, 괘씸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 전 대법원장의 ‘유체이탈’ 화법에 대해서도 반발하는 의견이 많았다. B판사는 “‘잘못은 없지만 혹시 있다면 내가 책임지겠다’면서 마치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듯이 말하는 게 과연 책임지겠다는 태도인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A판사도 “책임은 나에게 미루라면서 혐의는 부인하는 건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말”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양 전 대법원장이 혐의를 부인하는 것을 비판하는 시각에 대해 반대 의견도 있었다. 재경지법 C판사는 “사법부 수장으로서 재임 기간 있었던 일에 대해 반성하고 책임감을 느낀다는 측면은 있었다”고 말했다.
재경지법 D판사도 양 전 대법원장의 ‘국민들이 법관을 믿어야 한다’는 말에 대해 “말씀 자체는 맞는 말”이라며 “현재 법원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라고 인정했다.
다만 양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점에 대해선 반대 의견이 다수였다. D판사는 “피의자가 법원을 배경으로 기자회견을 하는 게 법원에 남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겠냐”며 우려하는 뜻을 나타냈다.
A판사도 “법원은 재판을 하는 곳이고 사법농단 수사에 대한 재판은 자기 치부에 대해 재판하는 ‘셀프 재판’이라는 문제의식도 있다”며 “그런 의심을 강화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양 전 대법원장의 기자회견에 대해 법원 내부를 향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A판사는 “내가 범죄자로서 수사받는 게 아니라 법원과 검찰이 싸우고 있다는, 대결하는 프레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사법부 독립을 해치는 검찰에 맞서 독립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여전히 대법원장으로서의 상징성을 갖고, 법관들로 하여금 ‘우리의 수장이 저런 고초를 당한다’는 메시지를 안겨주고 싶을 수 있다”며 “이런 의도가 있다면 더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B판사는 “본인이 다 안고 가신다면 최소한 사실관계는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법리적으로 다투면 된다”며 “말씀대로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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