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혐의 40여개 몽땅 부인…‘셀프 영장청구’ 한 꼴

  • 뉴시스
  • 입력 2019년 1월 18일 18시 16분


전직 대법원장으로 헌정 사상 첫 구속영장이 청구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운명이 후배들 손에 달리게 됐다. 사법부를 이끌었던 수장이 결국 피의자 신분으로 영장심사대에 서게 된 것은 양 전 대법원장이 모든 혐의를 부인하면서 사실상 예고된 수순이었다.

18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전직 대법원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구속영장까지 청구된 것은 사법부 71년 역사상 처음으로, 양 전 대법원장이 그 불명예를 안게 됐다. 그는 지난 2011년 9월 취임해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법원 내홍이 계속되던 2017년 9월 6년의 임기를 마치고 법원을 떠났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및 법관 인사 불이익 등 사법부의 최고 책임자로서 각종 사법농단 의혹에 개입 및 지시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사법농단 의혹 중 핵심으로 꼽히는 일제 강제징용 소송과 옛 통합진보당 소송 관련 재판 개입 혐의부터 사법행정에 반대하는 판사들을 부당 사찰하고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혐의까지 40여개의 의혹에 휩싸여있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전격 청구된 것은 그가 조사 과정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책임을 회피하면서 피할 수 없는 조치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지난 11일 첫 소환한 이후 세 차례의 조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구체적인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실무진이 한 일을 알지 못한다는 등의 취지로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지시를 하거나 보고 받은 적이 없고 죄가 되지 않는다는 등의 주장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검찰은 구속수사를 통해 양 전 대법원장의 개입과 추가 혐의에 관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특히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일련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의 최종적인 결정권자이자 책임자로서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은 재판 독립을 훼손한 반헌법적 범행으로 개인의 일탈이 아닌 상하관계에 의한 명령체계로 이뤄진 행위라는 점에서 가장 큰 권한이 있는 사법부 수장에게 중한 형사책임을 묻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검찰은 지난해 6월 수사에 착수한 후 7개월여간 수많은 인적·물적 증거들을 수집해왔다. 이 과정에서 실무진 등 관련자들의 진술과 객관적 자료 등으로 이번 사태와 관련해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주도했다는 내용 등을 충분히 확인했다.

사법행정의 지휘라인인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이들의 ‘입’을 통하지 않고도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확보됐다는 것이다. 검찰은 당시 법원행정처 판사들의 진술 등을 통해 양 전 대법원장이 반드시 처장이나 차장을 통해 보고를 받은 것이 아니라 실무 담당자들에게도 보고와 결재 등을 받은 사실을 파악했다.

핵심 혐의인 강제징용 소송 등과 관련해서도 전범기업 측 대리를 맡았던 로펌 관계자를 직접 만나는 등 양 전 대법원장이 단순히 보고를 받은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외부와 접촉해 활동한 사실이 드러난 만큼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판사들의 인사를 결정하는 최종 결정권자로서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관여한 증거도 이미 확보됐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등 문건을 확인했고 양 전 대법원장이 인사 조치와 관련해 직접 ‘V’자를 표시하거나 결재한 사실도 드러났다.

양 전 대법원장과 대부분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임 전 차장이 이미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상황에서 공범으로서 형평성 문제도 있다. 중간 핵심 책임자인 임 전 차장이 “범죄혐의가 소명됐다”는 등의 이유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황에서 그에게 지시를 내렸던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수사도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은 다음주 초 열릴 것으로 보이며, 검찰은 이 같은 범죄 혐의의 중대성과 구속수사 필요성을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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