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심문 기일 확정…이르면 22일 구속기로 설듯
20년 후배 법관 심사…포토라인 패싱·법원서 소명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해 온 검찰이 본격 착수 7개월여만인 지난 18일 최종 책임자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사법연수원 2기)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신병확보에 나섰다.
통상 중요 사건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기일을 신속히 결정해왔으나, 법원은 헌정사상 첫 전직 대법원장에 대한 영장심사인 데다 이번 사건의 경우 고려할 부분도 적지 않아 상당한 고심에 빠져 있는 분위기다.
법원이 심사 기일 발표를 예고한 21일에는 구속의 기로에 놓인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운명의 날과 이를 심사할 전담판사 등이 확정된다.
◇사법부 전 수장 심리는 누가…20여년 후배법관 손으로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 여부에 대한 심리는 그보다 25기 이상 후배인 임민성(49·28기)·명재권(52·27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중 한 명이 맡게될 것으로 보인다. 둘 중 누가 되더라도 양 전 대법원장은 자신보다 20여년 가량 후배 법관의 판단을 받게 된다.
서울중앙지법은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가 전방위로 확대된 지난 9월 영장전담 재판부 2개를 증설해 5개로 늘렸다. 현재 영장전담 재판부는 박범석(46·사법연수원 26기)·이언학(52·27기)·허경호(45·27기)·명재권·임민성 부장판사로 구성돼있다.
통상 5명의 영장전담 부장판사들은 2개조로 번갈아가며 구속영장과 압수수색 영장을 심사하는데, 사건은 전산으로 무작위·동수 배당된다. 다만 기피 또는 제척 의심사유가 있을 경우 영장 처리 지침상 형사수석부장판사와 영장전담부 선임판사 협의로 재배당이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연루 의혹 법관들과 근무 연고 등이 겹쳐 논란이 된 박범석·이언학·허경호 부장판사는 빠지게 될 공산이 크다. 대신 비(非)행정처 출신이면서 양 전 원장과 근무지가 겹치지 않은 임 부장판사와 명 부장판사가 양 전 원장에 대한 심문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박병대(62·12기)·고영한(64·11기)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심사도 임 부장판사와 명 부장판사가 각각 나눠 맡은 바 있다. 구속영장이 기각된지 1달여만에 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영장이 재청구된 박 전 대법관의 경우 1차 영장심사를 진행한 임 부장판사를 제외하고 영장전담 재판부가 결정된다.
허경호 부장판사는 양 전 원장과는 서울북부지원에서 같이 근무한 경험이 있는 반면, 박 전 대법관과는 겹치지 않기에 박 전 대법관의 영장 심사를 맡게될 가능성이 있다.
공이 법원으로 넘어온 가운데, 앞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한 바 있는 법원은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놓고 법리적 판단 이외에도 대중의 여론이라는 부담까지 안게 됐다.
법원이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꼽히는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면 지난 기각 때보다 더 큰 비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을 동시에 청구한 것도 여론에 대한 부담을 법원에 안기기 위한 전략이란 시각도 있다.
◇양 전 대법원장, 검찰 이어 법원 포토라인도 ‘패싱’할 듯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지 3시간 만에 변호사를 통해 영장심사에 참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법원 포토라인 또한 지난 11일 검찰 조사 당시와 마찬가지로 말없이 지나칠 전망이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은 첫 피의자 신분 소환 조사날 자신이 몸 담았던 대법원 앞에서 대국민 입장을 발표하고 검찰 포토라인을 사실상 패싱해 논란이 됐다. 당시 동정 여론을 일으켜 보수성향의 법관을 결집하기 위한 것이자, 검찰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도 혐의를 ‘기억이 안 난다’, ‘실무자선에서 한 일이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는 취지로 전반적으로 부인하면서 검찰 과정을 건너뛰고 사실상 법원에서 소명하겠다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됐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를 맡은 최정숙 변호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은 참석하지만 포토라인에서는 아무 말씀 안 할 예정”이라며 “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이르면 22일로 예상되는 영장심사에서도 법관 앞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히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구속 가능성 얼마나…‘직접개입 물증’ 스모킹건 될까
구속 여부를 가를 핵심 쟁점은 양 전 대법원장이 관여했다고 검찰이 주장하는 혐의의 중대성과 얼마나 개입했는지 상당성의 소명에 달려 있다. 단순 지시·보고를 넘어 직접 주도했다는 중대성이 부각될수록 구속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양 전 원장의 구속영장에 총 40여개 범죄사실을 포함시켰다. 그중 Δ일제 강제징용 재판개입 Δ법관 사찰 및 인사불이익 Δ헌법재판소 비밀수집 및 누설 Δ통진당 지위확인 재판 개입 등이 핵심 혐의로 꼽힌다.
검찰은 개별 사안의 중대성을 강조하고, 관련자 진술과 물적 증거로 상당 부분 소명이 됐음에도 혐의 대부분을 부인하고 있다며 구속수사의 필요성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하급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59·16기)을 먼저 구속기소하며 양 전 대법원장과 공모했다고 적시한 만큼, 공범이 이미 구속돼 있다는 점을 들어 형평성을 강조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앞서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법원이 ‘관여 범위 및 공모 관계 성립’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며 기각한 바 있어,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서는 본인이 직접 나서 개입한 부분을 앞세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객관적 물증을 내세워 양 전 대법원장의 신병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일제 강제징용 재판과 관련해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측 변호를 맡은 김앤장 변호사와 양 전 대법원장이 여러차례 독대한 정황이 담긴 문건이 그 중 하나다.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등에 쓴소리를 한 판사들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해 직접 ‘V’ 표시한 것으로 추정되는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서’ 문건과 이규진 당시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의 업무수첩에 양 전 대법원장을 상징하는 ‘大’ 표시가 있는 점 또한 스모킹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거와 신분이 확실해 도망의 우려가 없다는 점은 양 전 대법원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압수수색 당시 자발적으로 이동식 저장장치(USB)를 제출하고, 검찰의 소환에 순순히 응하며 수사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인 점 또한 구속수사 필요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증거인멸 우려와 관련해선 이미 검찰이 혐의가 상당 부분 소명됐다고 자신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증거를 수집한 상태라 인멸할 우려가 없다고 법원이 판단할 경우 구속 사유로 인정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양 전 대법원장의 주요 혐의인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의 해석을 놓고 의견이 분분한 상황에서, 법원이 ‘재판개입은 대법원장의 직무권한에 속하지 않는다’는 등 법리상 직권의 범위를 엄격히 해석할 경우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판단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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