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판사가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검찰 조사를 받는 게 수치스럽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사법연수원 2기)은 23일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법정의 피고인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법연수원 25년 후배인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52·27기)에게 구속이 부당하다고 호소한 것이다. 하지만 명 부장판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영장을 발부했다. 영장심사 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하던 양 전 대법원장은 24일 새벽 교도관으로부터 영장 발부 소식을 들었다. 수용복으로 갈아입은 뒤 독방에 수감됐다.
●“모함” “진술 왜곡” 주장 패착 양 전 대법원장 측은 23일 영장심사에서 자신을 재판 개입 및 사법행정권 남용의 최종 책임자로 지목한 후배 판사 등의 진술과 증거들이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또 “모함을 받고 있다”며 ‘법원에 대한 모욕’ ‘수치’ ‘수모’ 등을 강조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화이트칼라 범죄에서 저런 주장을 펴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날 오전 10시 반 서울중앙지법 321호 법정에서 시작된 영장심사는 오후 4시까지 5시간 30분가량 이어졌다. 양 전 대법원장은 점심을 빵과 우유로 때웠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범죄 사실이 일제 강제징용 소송 지연 개입 등 40여 가지에 달하고, 주도적으로 재판의 공정성과 독립이라는 헌법 가치를 훼손한 만큼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재판부에 주장했다. 검찰은 특히 양 전 대법원장의 발언이 빼곡하게 적혀 있는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57·18기)의 업무수첩을 ‘스모킹건’(결정적 증거) 중 하나로 제시했다. 검찰은 수첩에 적힌 한자 ‘大’가 양 전 대법원장이 한 발언을 의미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 측은 ‘大’를 나중에 수첩에 써넣었을 수 있기 때문에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 강제징용 소송 지연 개입 혐의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은 “(전범기업을 대리하는) 김앤장 변호사는 만났지만 소송과 관련한 논의는 하지 않았다”며 김앤장 측이 사실을 왜곡했다는 주장을 편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에서 인사 불이익을 줄 판사의 이름 옆에 직접 ‘V’ 표시를 했다는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기계적으로 표시한 것”이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공교롭게 이날 법원은 후배 검사에게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로 기소된 안태근 전 검사장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영장심사에서 안 전 검사장 선고를 거론하며 수십 명의 법관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가 검사 1명에 대한 인사보복 혐의보다 훨씬 무겁다는 논리를 폈다.
결국 명 부장판사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양 전 대법원장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구속 여부 놓고 장외 찬반집회 이날 법원 밖에선 오전부터 양 전 대법원장 구속 찬반 맞불 집회가 열렸다. 서울중앙지법 앞 법원 삼거리 오른편엔 ‘양승태 구속’, 왼편엔 ‘사법부는 좌파정권 눈치 그만 보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경찰 병력이 양쪽의 접촉을 차단해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법원노조)는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을 촉구하는 법원 직원 3253명의 서명지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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