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구속 vs 박병대 기각…법원 ‘엇갈린 판단’ 이유는

  • 뉴시스
  • 입력 2019년 1월 24일 11시 56분


한날 구치소에서 대기하던 전직 대법원장과 전직 대법관의 운명이 엇갈렸다. 전직 대법원장은 그대로 구속됐고, 전직 대법관은 집으로 돌아갔다.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된 것은 사법부 71년 역사상 처음이다.

24일 법원에 따르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를 받고 있는 양승태(71·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62·12기) 전 대법관의 구속 심사 결과는 달랐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같은 법원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박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당초 사상 초유의 전직 대법원장 구속영장 청구에 법조계 안팎에서는 발부가 쉽지 않으리라는 관측이 나왔다. 양 전 대법원장이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고 법리적으로 죄가 성립되는 지 여부 등을 첨예하게 다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속영장이 전격 발부되면서 당시 최고 결정권자로서 양 전 대법원장의 책임이 인정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임 시절 재판 개입 등 각종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주도·지시를 했다는 검찰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는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 사유에도 드러나 있다. 명 부장판사는 “범죄사실 중 상당부분의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의 40여개 혐의 상당 부분이 인정되고 일련의 ‘사법농단’ 의혹 관련 범죄혐의가 중대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를 받은 ‘공범’이자 ‘핵심 중간 책임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구속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임 전 차장과 거의 같은 혐의를 받고 있다. 임 전 차장의 범죄혐의가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으로 나뉘었다가 양 전 대법원장으로 다시 합쳐지는 모양새다.

임 전 차장은 구속 이후 검찰 조사에서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막지는 못했다. 그는 각종 의혹 관련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개입 여부 등에 관해 입을 다물고 있지만, 다른 관련자들의 진술과 자료 등의 증거로 혐의가 소명됐다는 해석이다. 또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임 전 차장 때는 포함되지 않았던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혐의 등도 추가됐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반드시 처장을 통하지 않고도 실무 담당자들에게 직접 업무 보고를 받은 진술 등도 확보했다. 임 전 차장이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직접 보고한 사례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 취임해 2017년 퇴임했다. 임 전 차장은 2012년 8월부터 3년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을 하다가 차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2017년 3월 의혹이 불거져 사직하기까지 법원행정처에서 5년여간 일했다.

전직 사법부 수장으로서 그 지위를 고려할 때 증거인멸 우려도 있다고 봤다. 그가 ‘실무진들이 알아서 한 일’이라는 등 책임을 떠넘기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 법원행정처 근무 판사 등에 대한 영향력에 비춰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에서 ‘말맞추기’ 등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 것으로 풀이된다.
두 번째 구속 위기를 맞았던 박 전 대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과는 달리 한숨을 돌렸다. 검찰은 지난해 12월7일 박 전 대법관의 1차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40여일간 보강수사를 벌여 영장을 재청구했지만 그 결과를 뒤집지는 못했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고등학교 후배의 형사재판 기록을 무단으로 확인한 혐의(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 위반)와 서기호 전 정의당 의원의 법관 재임용 탈락 취소 소송 관련 재판개입 등 혐의를 새로 포함했다.

하지만 허 부장판사는 “추가된 피의사실 일부는 범죄 성립 여부에 의문이 있다”고 밝혔다. ‘죄가 되지 않는다’는 박 전 대법관 측 주장과 같이 범죄 성립 여부를 두고 법리 다툼이 있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또 1차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의 수사내용을 고려해도 박 전 대법관의 범죄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1차 구속영장 청구 당시에도 법원은 “범죄혐의 관여 범위 및 그 정도 등 공모관계 성립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기각했다.

박 전 대법관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등 각종 재판에 개입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고교 후배의 상고심 재판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판결을 한 정황 등을 파악하고 재판부 배당 조작 등 추가 수사를 진행 중이다.

【서울=뉴시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오늘의 추천영상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