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법원장 제 손으로 구속…사법부, 신뢰 회복할까

  • 뉴시스
  • 입력 2019년 1월 24일 18시 12분


‘사법농단’ 의혹 사건의 정점으로 지목되는 양승태(71·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이 24일 구속되면서 현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 사법부에도 후폭풍이 일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전직 사법부 수장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은 피했지만, 또다시 내부 갈등이 재점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재판 개입 등 각종 사법농단 의혹으로 추락한 사법신뢰를 회복하고 개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사법부 71년 역사상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법원 안팎에서는 예상을 뒤집은 결과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혐의를 모두 다투고 있고 소명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과거 수장을 자신들의 손으로 구속하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관측이 높았다.

하지만 법원은 “범죄사실 중 상당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는 등의 사유로 양 전 대법원장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는 재판 개입 등 각종 사법농단 의혹을 주도·지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양 전 대법원장의 개입과 책임이 인정된 것으로 풀이된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이어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면서 사법부는 다시 내홍에 휩싸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원 스스로 양 전 대법원장의 범죄사실 혐의가 소명됐다고 밝히면서 그간 검찰 수사로 드러난 사법행정권 남용과 여러 의혹들을 일부분 인정한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3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촉발돼 검찰 수사까지 이어진 일련의 사태는 지난 2년여간 논란이 계속돼왔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진상조사위원회부터 김 대법원장 체제에서 진행된 추가조사위원회와 특별조사단까지 총 세 차례의 내부 조사 과정을 거치며 내홍을 겪어왔다.

지난해 6월 수사가 본격 시작된 후로도 검찰과 법원간 영장 등을 두고 번번이 마찰이 빚어졌고, 법원 내부에서도 고위 법관들을 중심으로 검찰과 김 대법원장을 향한 불만이 터져나왔다.

임 전 차장의 첫 조사 후에는 고등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 게시판 ‘코트넷’에 검찰의 밤샘수사 관행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고, 임 전 차장 구속 뒤에는 현직 법원장이 “법원과 판사는 검사에게 영장을 발부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메일이 압수수색된 부장판사는 수사의 위법성을 주장하는 장문의 글을 게시했다.또 정치권에서 특별재판부와 법관 탄핵 등이 화두가 되면서 법원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됐다.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탄핵소추절차까지 검토돼야 할 헌법위반 행위”라고 결의하면서 이를 둘러싼 내부 격론도 벌어졌다.

반면 법조계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을 계기로 사법부가 신뢰 회복의 길로 본격 나서야 한다는 주문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대법원장에게 쏠렸던 권한과 이른바 ‘엘리트 법관들의 승진 코스’로 일컬어졌던 법원행정처 등을 쇄신하고 사법개혁 추진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이 다음달께 ‘사법농단’ 의혹 수사를 마무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사법부도 2년여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내부 봉합을 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의혹의 진앙지로 꼽히는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에 관한 합의제 기구로 사법행정회의 신설 등 개혁안을 제시해왔다. 당장 오는 28일에는 정기인사를 앞두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출근길에서 “참으로 참담하고 부끄럽다”며 “다만 저를 비롯한 사법부 구성원 모두는 각자 자리에서 맡은 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겠다. 그것만이 이 어려움을 타개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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