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소리없는 울부짖음, 사회는 외면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일 03시 00분


‘도가니’ 1심 공판 맡았던 女검사 ‘분노의 고백’

“그 분노에, 그 절망에 터럭 하나하나가 올올이 곤두선 느낌. 어렸을 때부터 계속된 짓밟힘에 익숙해져 버린 아이들도 있었고, 끓어오르는 분노에 치를 떠는 아이들도 있었고….”

영화 ‘도가니’의 소재가 된 광주 인화학교 청각장애아 성폭행 사건 재판 당시 공판에 관여한 여검사가 법정에서 느꼈던 분노와 실망을 기록한 일기와 현재 심경을 담은 글을 30일 검찰 내부 게시판에 올렸다.

주인공은 2007년 1심 당시 광주지검 공판 검사였던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임은정 검사(37·사법연수원 30기). 임 검사는 이날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e-pros)에 ‘광주 인화원…도가니…’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에서 “어제 (영화) ‘도가니’를 보고 그때 기억이 떠올라 밤잠을 설쳤다”며 사건 당시를 되새겼다. 그는 “피해자들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재판 결과에 경찰, 검찰, 변호사, 법원 간에 유착이 있을 것이라고 오해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지 싶다”고 적었다.

임 검사는 공판 당시 썼던 2건의 일기 내용도 공개했다. 그는 공판이 진행 중이던 2007년 3월 12일 일기에 “6시간에 걸친 증인 신문 때 법정은 이례적으로 고요했다. 법정을 가득 채운 농아들은 수화로 이 세상을 향해 소리 없이 울부짖는다”고 밝혔다.

2008년 7월 항소심 판결 1년 2개월 뒤인 2009년 9월 20일 작가 공지영 씨의 소설 ‘도가니’를 읽은 뒤 적은 일기도 있었다. 임 검사는 “(소설에 피해자들의 이름이) 가명이라 해서 어찌 모를까. 아, 그 아이구나, 그 아이구나, 신음하며 책장을 넘겼다”고 했다. 또 “더러는 피해자에게 감정이입이 돼 눈물을 말려야 할 때가 있다”고 덧붙였다.

임 검사는 항소심 판결에 대해서도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됐지만 2심에서 (피고인들이) 집행유예로 풀려나왔다는 뉴스를 들었다”며 “현실적으로 성폭력에 관대한 선고 형량을 잘 아는 나로서는 분노하는 피해자들처럼 황당해하지 않지만 치가 떨린다”고 털어놨다.

임 검사는 이날 글을 올린 뒤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공판 때 피고인들의 태도를 묻자 “다른 사건의 파렴치범들처럼 당시 사건 공판 때도 (교장 등) 피고인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자기들의 혐의를 부인했다”고 회고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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