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조두순’ 고종석 사건 충격]“나영아 미안해, 친구 지켜주겠다던 약속 못 지켜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일 03시 00분


나영이 아버지도 ‘제2 조두순 사건’에 울분

“다른 친구들은 이제 다치지 않도록 해주겠다고 나영이와 몇 번이나 약속했는데 그걸 못 지켰네요. 정말 억장이 무너집니다.”

2008년 12월 조두순에게 끔찍한 성폭행을 당한 나영이(가명·당시 8세)의 아버지는 8월 30일 전남 나주에서 7세 여아가 집에서 잠자다 납치돼 성폭행을 당했다는 소식에 밤새 잠을 못 이뤘다. 그는 31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4년 전 비극이 떠올랐는지 중간중간 말을 잇지 못했다.

“세상 살기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짐승이 돼가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을까요. 자고 있는 그 어린아이를 어떻게 집 안에까지 들어와 납치해 갈 수 있는지….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그는 “나영이가 사건 직후 응급실에서 깨어나자마자 ‘친구들이 주변에 있으니 그 아저씨(조두순)한테 안 다치게 해 달라’고 했다”며 “언론 인터뷰도 자기 얘기를 알려서 다른 피해가 없게 해주기 위한 목적으로만 하라고 했는데 결국 이런 일이 또 터져 딸을 볼 낯이 없다”고 했다.

나영이는 2010년 학교 복도에서 김수철에게 납치돼 성폭행을 당한 8세 초등학생의 병실을 직접 찾아 선물로 차고 있던 시계를 주고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며 위로했다고 한다. 두 학생은 이후 종종 만나며 서로의 상처를 다독이고 있다. 나영이 아버지는 “아이들이 어렵게 상처를 회복해 가고 있는데 어린 소녀들이 납치되고 죽는 일이 반복되면 피해자들은 그때 공포가 떠올라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예전 상처에 파묻히게 된다”며 울먹였다.

나영이는 심각한 성폭행 후유증에 시달리다 배변주머니를 제거하고 얼마 전부터 정상적으로 학교생활을 하며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올 7월 경남 통영 김점덕 사건이 발생한 이후엔 종종 불안 증상을 보인다고 했다.

나영이 아버지는 “나주 사건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딸에게 차마 얘기하지 못했지만 알게 되면 예전처럼 또다시 말문을 닫을까봐 걱정”이라며 “나영이가 최근 여러 성범죄 사건을 접하며 ‘요즘도 나쁜 아저씨들이 이렇게 많아요?’라고 물어올 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말했다. 나주 사건은 나영이와 가족들에게 4년 전 악몽을 고스란히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나영이 아버지는 그동안 여러 성폭력 대책이 나왔지만 정부가 이를 실천하려는 의지가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약물치료(화학적 거세)를 도입한다고만 했지 관련 연구나 보완을 통해 제대로 시행하지 않고 있다”며 “사람이길 포기한 성범죄자들은 철저히 격리해야 하는데 사건이 지나가고 나면 그 심각성에 무관심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성세대가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성폭력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와 왜곡된 인식이 많은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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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도 나주 성폭행 사건이 터지자 “야수의 손길이 집안까지 뻗친다면 도대체 안전한 곳이 어디냐”며 극도의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딸을 둔 주부 강문영 씨(36)는 “그동안에는 학교나 학원 다녀오는 길만 신경 쓰면 됐는데 이제는 아이를 집에 두고 장보러 갈 때도 불안에 떨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신영호 씨(47)는 “김점덕 사건 이후 초중고교생인 세 딸을 등하굣길마다 자가용으로 태워주는데 도대체 얼마나 더 신경을 써야 하느냐”며 “아내는 직장에 있을 때도 아이들 걱정에 일손이 안 잡힌다고 하는데 딸들 가방에 호신용품이라도 달아줘야 되는 거냐”고 토로했다.

지난달 딸을 출산한 정모 씨(30)는 “여성과 어린이를 지켜주는 사회 안전망이 완전히 무너진 것 같다”며 “아기를 위해서라도 이민을 가야겠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는 ‘성폭행범을 강력 처벌하자’는 서명운동이 벌어져 31일 하루에만 2만여 명이 서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나주 초등생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국민께 심심한 위로를 표하고 가족에게도 위로를 보낸다. 정부를 대신해 국민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나영이#고종석#제2 조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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