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일반적으로 범죄나 재난, 전쟁 등 충격적인 경험은 뇌 속에 깊이 각인돼 평생 상처로 남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기억이 저장되는 부위인 ‘시냅스’의 단백질을 조절하면 기억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봉균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팀은 5일 뇌신경세포의 연결 부위인 시냅스에서 기억을 떠올리고 다시 저장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기억은 수초에서 수십 분간 유지되는 단기기억과 수십 년간 유지되는 장기기억으로 나뉜다. 이 중 장기기억은 한 번 만들어지면 반복적으로 떠올리고 다시 저장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각인된다. 첫 기억은 뇌 안에서 특정 단백질이 합성돼 시냅스 구조가 단단해질 때 만들어진다.
이 기억을 떠올리려면 시냅스를 단단하게 만든 단백질을 분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떠올린 기억은 단백질이 재합성돼야만 다시 저장된다. 기억에 새로운 정보를 추가하거나 수정할 때도 재합성이 필요하다.
연구팀은 일련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시냅스의 변화를 살피기 위해 신경체계가 단순한 바다달팽이 ‘군소’를 이용했다. 군소의 꼬리를 여러 번 콕콕 찔러 민감한 기억을 남긴 뒤 단백질의 재합성을 막도록 한 결과 기억이 지워지는 것을 발견했다. 단백질 분해를 막는 물질을 동시에 쓰면 저해제를 상쇄해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단백질의 분해와 재합성이 동일한 시냅스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기억을 처음 저장하는 곳과 기억을 떠올리고 다시 저장하는 곳이 같다는 뜻이다.
강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나쁜 기억을 지우거나 좋은 기억을 유지하는 일에 응용할 수 있다”며 “다양한 동물 실험에서 효능이 확인된다면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에게 발생하기 쉬운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같은 정신질환 치료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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