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성폭행범 첫 ‘약물치료’ 명령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4일 03시 00분


미성년자 5명에 몹쓸짓 30대… 성충동 억제 약물 3년간 투여
3월부터 적용대상 확대

국내에서 처음으로 법원이 성폭행범에게 ‘성충동 약물치료’를 선고했다. 2011년 7월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약 2년 6개월 만이다. 이는 잇따르는 성범죄를 엄벌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1부(부장 김기영)는 3일 10대 소녀 5명을 성폭행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로 표모 씨(31)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하고 약물치료 3년, 정보공개 10년, 전자발찌 부착 20년을 명령했다. 표 씨는 2011년 스마트폰 채팅으로 만난 10대 소녀 5명에게 돈을 주고 성관계를 맺으면서 이를 몰래 촬영한 뒤 “인터넷에 공개하겠다”고 협박해 성폭행한 혐의로 지난해 8월 기소됐다. 표 씨는 2001년에도 특수강도강간죄로 9년 동안 복역하고 2010년 8월 가석방된 상태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왜곡된 성의식을 갖고 있어 스스로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인 것으로 판단된다. 약물치료는 과도한 성적 환상과 충동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성충동 약물치료가 도입된 후 검찰이 법원에 이를 청구한 것은 표 씨가 처음이다. 이후 청구된 6건 중 1건은 법원이 기각했고 5건은 재판이 진행 중이다. 현행법상 약물치료는 법원과 법무부 치료감호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할 수 있다.

이에 앞서 지난해 5월 치료감호심의위원회는 상습적 아동 성폭행범에게 약물치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치료감호심의위원회가 최고 3년까지 약물치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과 달리 법원은 최고 15년까지 가능해 의미가 크다. 3월부터는 피해자 연령에 상관없이 성폭행을 했을 때 약물치료를 청구할 수 있도록 범위가 확대된다.

성충동 약물치료는 주기적으로 주사를 놓거나 알약을 먹여 남성 호르몬 생성을 억제해 성욕을 감퇴시키는 방법이다. 치료 명령은 검사의 지휘를 받아 보호관찰관이 집행한다. 표 씨에게는 남성 전립샘암, 여성 자궁내막증 등의 치료에 쓰이는 ‘루크린(루프롤라이드)’과 ‘고세렐린’ 등 성선자극호르몬 길항제가 사용된다. 성선자극호르몬 길항제는 뇌하수체에 작용해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생성을 억제해 성충동을 줄이고 발기력을 저하시킨다. 수염이 나지 않거나 어지럼증이 생기고 골밀도가 낮아지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성충동 약물치료 대상자는 석방 전 2개월 안에 약물을 투여하고 석방 후에도 주기적으로 약물치료에 응해야 한다. 출소 후 신체 상태에 따라 1개월, 3개월, 6개월에 한 번 그 기간에 맞는 약물이 투약된다. 이 모든 과정은 법무부 보호관찰관의 동행하에 이뤄진다. 이들이 성기능을 강화시키는 다른 약물을 투약했는지에 대해서도 월 1회 이상 검사받게 된다.

성충동 약물치료에 드는 비용은 1인당 연간 500만 원 선. 약물 비용만 따지면 175만 원 수준이지만 호르몬 수치와 부작용 검사를 하는 데 60만∼70만 원, 심리치료를 병행하는 비용이 270만 원가량 든다. 비용은 국가가 부담한다.

한국은 성충동 약물치료 제도를 도입한 아시아 최초의 국가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현재 세계적으로는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루이지애나 위스콘신 오리건 등 미국 8개 주와 독일, 덴마크, 스웨덴, 폴란드 등의 국가에서 성충동 약물치료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 성충동 약물치료 ::

본보는 일부에서 사용하는 ‘화학적 거세’ 대신 법적 공식 용어인 ‘성충동 약물치료’로 표기합니다. 약물치료는 ‘거세’처럼 영구히 성적 욕구를 없애는 게 아니라 일시적으로 억제하는 방식입니다. 본보는 실상을 정확히 반영하고 법 규정을 따른 ‘성충동 약물치료’로 표기합니다.

주애진·박희창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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