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으로 변한 새아빠… 추방 두려워 신고 못한 지은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9일 03시 00분


[그림자 아이들]<중> 맞아도 숨죽이고 참아야 하는 인권의 그늘

미등록 이주아동을 돌보는 경기 군포시 '아시아의 창' 어린이집에서 아동들이 흙놀이를 하고 있다. 이 어린이집은 이주아동의 보육권 신장에 힘쓰고 
있다. (편집자주-기사에 등장한 아동들은 이 어린이집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군포=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미등록 이주아동을 돌보는 경기 군포시 '아시아의 창' 어린이집에서 아동들이 흙놀이를 하고 있다. 이 어린이집은 이주아동의 보육권 신장에 힘쓰고 있다. (편집자주-기사에 등장한 아동들은 이 어린이집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군포=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베트남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초등학교 6학년생 이지은(가명) 양은 2년 전 엄마가 한국인 새아빠를 집에 들인 뒤부터 집을 자주 나갔다. 붙잡혀 오면 엄마에게 회초리로 매섭게 맞았지만 나가는 것이 더 나았다. 엄마가 일하러 나갈 때 새아빠는 짐승으로 변했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만 노려 지은이를 성폭행했다. 지은이는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바깥일에 치인 엄마는 멀고 먼 존재였다.

지은이는 경찰에 신고할 생각도 했지만 추방될까 두려워 엄두를 못 냈다. 지은이처럼 미등록(불법 체류) 이주아동은 학대를 당해도 추방 공포 때문에 속으로 울 때가 많다. 미등록 이주아동 학대 피해 통계는 따로 집계되고 있지 않다. 하지만 학대를 당하는 다문화 및 외국인 아동 피해를 보면 그 증가세를 짐작할 수 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다문화 및 외국인 아동 피해 신고는 지난해 1217건으로 2013년(340건)의 3.6배였다.

○ 맞아도, 버려져도 참아야 하는 아이들

▲ 최근 부모의 모국으로 돌아간 미등록 이주아동이 지은 동시 ‘내 안엔 내가 없다’. 이 아동은 ‘나마저 잃어버리고 쇠사슬에 묶여 간다’고 적었다. 아름다운 재단, 전주대 산학협력단 제공
▲ 최근 부모의 모국으로 돌아간 미등록 이주아동이 지은 동시 ‘내 안엔 내가 없다’. 이 아동은 ‘나마저 잃어버리고 쇠사슬에 묶여 간다’고 적었다. 아름다운 재단, 전주대 산학협력단 제공
네팔인 미등록 부부가 한국에서 낳은 아르케이(가명·2)군은 지난해 생후 13개월에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뒤 몸무게가 잘 늘지 않았다. 불안해진 엄마 미나(가명·39) 씨가 어느 날 어린이집에 가보니 “야, 빨리 밥 안 먹어”란 고함이 들렸다. 동시에 나온 아들의 울음소리가 미나 씨 마음을 찢었다. 안에 들어간 미나 씨 눈에 들어온 건 식은 국과 밥뿐인 아들의 밥상. 한국 아이들 상엔 달걀과 고기가 놓여 있었다. 미나 씨는 “내가 부탁을 하면 원장은 법과 규칙을 운운했다. 불법 체류자라 신고 못 할 걸 알고 당당하게 굴었다”고 말했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지는 미등록 신생아들은 한국인 유기 영아들보다 훨씬 힘겨운 삶을 맞는다. 올해 1월 어느 날 오후 9시경 서울 영등포구 한 모텔에서 핏덩이 여자 신생아가 홀로 발견됐다.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이 아기 엉덩이에 딱딱하게 굳어 있는 대변을 떼어내자 아기가 날카롭게 울었다. 아기는 저체온증에 걸려 응급실로 이송됐다. 경찰 수사 결과 아기 엄마는 미등록 중국인이었다. 경찰은 엄마에게 딸을 중국으로 데려가 출생신고 하라고 권했지만 엄마는 “아기를 키울 수 없다”며 거부했고 최근 강제 출국됐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신수경 변호사는 “아이는 출생신고도 안 돼 보호소들을 전전하기 쉽다. 정부 지원금은 출생신고된 아동에게만 지급돼 보호소들이 예산상 입소시키기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 방황하다 자해 충동까지 느껴

▲ 미등록 이주아동이 그린 자신의 모습. 바다에 빠진 자신을 사촌이 구하러 오고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남양주외국인복지관 제공
▲ 미등록 이주아동이 그린 자신의 모습. 바다에 빠진 자신을 사촌이 구하러 오고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남양주외국인복지관 제공
아이들은 추방 공포로 인한 심리적 학대에도 시달린다. 방글라데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미등록 아동 마히아 양(12)은 7세 때 외국인 복지센터에서 패닉에 빠졌다. 교사가 장난을 멈추게 하려고 “장난치면 경찰 아저씨가 잡아간다”고 말했던 것. 사색이 된 아이는 벌벌 떨며 울었다. 알고 보니 아이는 미등록자가 많은 한 공단에서 이웃 아저씨들이 출입국관리소에 거칠게 잡혀가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다.

미등록 이주아동을 돌보는 ‘아시아의 창’ 어린이집의 배상윤 원장은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주는 유년기에 아이들이 사랑을 받지 못하니 입소 아이들 중 30%가량은 발달이 느린 편이다.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도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아이들은 방황의 길을 걷는다. 중국인 미등록자 부모가 한국에서 낳은 A 군(14)은 초등학생 때 반에서 1등을 하고 반장을 한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엄마에 이어 아빠까지 중국으로 추방되며 한국에 홀로 남았다. A 군은 아빠와 살던 집에서 홀로 지내며 컴퓨터 게임과 성인비디오로 시간을 견뎠다. 반항심에 폭력적으로 변하다 보니 친구들과 멀어져 외톨이가 됐다.

인천 서구에서 기자와 만난 택시운전사 민승춘 씨(65)는 최근 한 모텔 앞에서 18세 태국계 소녀를 태웠다. 아이 얼굴은 붓고 까져 피가 흘렀다. 민 씨가 어찌된 일인지 묻자 아이는 서툰 한국어로 성매매 남성이 한 짓이라고 말했다. 경찰에 신고해 주겠다는 민 씨 말에 아이는 “불법 체류자라 안 된다”고 속삭였다.

은수연 안산글로벌청소년센터 과장은 “탈선하는 미등록 이주아동은 정서가 불안하고 자해 위험까지 있다. 아이들을 보호시설에 안정적으로 입소시킬 법이 생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은아 achim@donga.com / 인천=김예윤 /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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