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2차전을 예고했던 여야가 6일 본회의 일정을 미룬 채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고 남은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인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 2건과 민생법안 180여 건을 상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민생법안 우선처리를 조건으로 여기에 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의 철회와 함께 본회의 연기를 요청했고, 민주당이 이를 수용하면서 여야 격돌은 일단 9일로 미뤄졌다.
지난해 말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등을 처리해 ‘급한 불’을 끈 민주당으로선 굳이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하루 앞두고 야당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연말 내리 ‘연패’를 경험한 한국당은 민주당의 연이은 강행처리 흐름을 잠시라도 끊어보겠다는 의도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국회에는 여야가 서로 날선 공방을 주고받는 가운데 전운이 흘렀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당 회의에서 “한국당은 새해에도 장외집회를 열고 무책임한 정쟁만 이어가고 있다”며 “새해 첫 본회의를 열어 검경 수사권 조정법을 상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에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연말처럼 하루 이틀짜리 쪼개기 임시국회를 또 열 것 같다”며 “연말의 꼴불견을 새해 벽두부터 재현하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양당은 독설 뒤로 막판 협상 시도도 이어갔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여야 간 입장이 공수처법만큼 첨예하게 갈리진 않는 데다, 양당 모두 재충돌은 부담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도부 소속 한 의원은 “사실 한국당도 필리버스터를 더 이어간다고 해서 얻을 실익도 없다”며 “한국당에 민생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풀고 급한 법안부터 처리하자고 제안했다”고 했다.
한국당은 이날 오후 의원총회를 열고 민생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전부 철회하되 9일 본회의에 민생법안을 먼저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해 여당과 협상할 시간을 벌어보겠다는 것. 민주당이 예정대로 이날 오후 7시 하루짜리 본회의를 열면 필리버스터에 허락된 시간도 5시간 이내로 제한된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심 원내대표는 의총 후 기자들과 만나 “7, 8일 국무총리 인사청문회를 열고 9일에 본회의를 열자고 제안했다”면서도 “연말 예산안, 패스트트랙 법안 날치기 처리에 대해 문희상 국회의장과 민주당이 사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충돌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국당 의총 이후 기자들과 만나 “우선 민생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민생법안 처리) 이후의 패스트트랙 관련 법안은 어떻게 할 거냐의 문제에 대해선 지혜를 더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9, 10일에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상정해야 한다”며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철회하지 않은 ‘유치원 3법’ 등 쟁점 법안에 대해서도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 내용을 둘러싼 이견도 그대로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사실상 폐지하고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부여하는 게 핵심이다. 이 경우 검찰은 경찰이 사건을 송치하기 전까지 부실 수사나 인권 침해가 이어지더라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여당은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권과 시정조치 요구권, 재수사 요구권 등이 있는 만큼 검경 수사권 조정안의 부작용이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국당은 현행 4+1 협의체에서 마련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도입될 경우 경찰국가화를 조장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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