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인천 연수구의 한 15층 아파트 옥상에서 중학생 A 군(14)을 집단 폭행해 죽음으로 내몬 가해자들은 경찰 조사 결과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교문 밖을 맴돈 사실상의 ‘학교 밖 청소년’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상해치사 혐의로 경찰에 구속된 가해학생 4명은 학교에 무단결석하는 일이 잦았고 일부는 강제전학 처분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이들 대부분 부모의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그 중 1명은 자취방에서 홀로 생활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학교와 가정의 관심과 관리를 받지 못한 채 친구 집이나 공원, PC방 등을 전전하며 폭력 성향을 키워왔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 ‘학교 밖 청소년’들, 무리 중 약자 폭행
22일 인천 연수경찰서 등에 따르면 B 군(14·구속) 등 가해자들은 올해 여름 무렵 이들 중 한 명의 초등학교 동창인 A 군을 알게 된 뒤 함께 어울렸다. 하지만 무리 안에서 A 군은 자주 폭행을 당하는 약자였다는 게 A 군 주변인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A 군의 러시아 국적 어머니(38·여)는 “가해자들이 집에 놀러와 아들 침대에서 자는 경우가 많았고 아들은 맨바닥에서 베개와 이불도 없이 잤다. 이들과 함께 있을 때 아들은 자주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고 전했다.
‘학교 밖 폭력’ 피해자는 가해자들과 함께 어울렸던 무리의 일부인 경우가 많다. A 군 역시 가해학생들과 어울리며 올해 무단결석 일수가 60일에 달해 유급이 확정된 상태였다. 이들 청소년들은 무리 안에서 힘이 약하거나 불리한 배경을 가진 동료를 희생자로 특정하고 집중 공격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A 군의 가족과 지인들은 “A 군이 체구가 작고 러시아 혼혈로 외모가 달라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한 것 같다”고 전했다. A 군 어머니의 지인은 “가해자 중 한 명은 초등학교 때부터 A 군을 괴롭혔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범행 당일인 13일 새벽 이들의 연락을 받고 나간 A 군은 공원에서 무릎을 꿇은 채 얼굴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폭행을 당했다. A 군이 “살려 달라”고 애원했지만 이들은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몇 시간 뒤 15층 옥상에서 떨어진 A 군은 참혹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가해자 중 한 명이 다닌 인천의 한 중학교 교사는 본보 기자에게 “학교에 자주 빠져 주변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아이였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 교내폭력 41% 줄때 ‘학교 밖 폭력’ 2.5배 늘어
교내 폭력의 경우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 운영 등 제도적 장치가 확대되고 있지만 학교 울타리 밖에 있는 청소년들 사이에 벌어지는 폭력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다. 이 때문에 교내에서 벌어지는 학교 폭력은 2012년에서 2017년 사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 반면 ‘학교 밖 폭력’은 2.5배가량 늘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교내 폭력으로 입건된 재학생은 2만3877명에서 1만4000명으로 41% 줄었다. 하지만 폭력 행위로 입건된 ‘학교 밖 청소년’은 2055명에서 4850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재학시 3개월 이상 결석했거나, 고교에서 자퇴 또는 제적·퇴학 처분을 받은 경우 ‘학교 밖 청소년’으로 분류된다.
지난해 7월 발생한 ‘강릉 여고생 폭행사건’의 경우 가해학생 6명 중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9월 ‘부산 여중생 집단폭행 사건’의 가해자 3명 역시 학교에 적을 두고는 있었지만 절도, 상해 등의 혐의로 보호관찰 중이거나 소년원 위탁 상태로 학교의 관리·감독을 벗어난 상태였다.
학교 밖 청소년들 사이의 폭력은 갈수록 잔혹해지고 있다. 사망이나 중상해 등 극심한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는 피해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김승혜 본부장은 “학교 안 폭력은 학폭위 등의 장치를 통해 피해 징후가 비교적 빨리 드러나지만 학교 밖 폭력은 무풍지대”라며 “성인 수준의 범행이 이뤄져 경찰이 개입하기 전까지 통제가 안 되다보니 가해 청소년들이 폭력성에 둔감해지고 갈수록 흉포화 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 “이름 대신 ‘외국인’ 부르며 따돌려” 동요하는 러시아인 커뮤니티 ▼
러시아인 어머니가 홀로 인천 중학생 집단폭행 사건의 피해자 A 군(14)을 키웠다는 사실이 전해지며 재한 러시아인 사회가 술렁였다. A 군이 다문화가정에서 자란 혼혈이란 이유로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는 주변인들의 증언이 나오자 ‘남 이야기가 아니다’란 러시아인들의 호소가 이어졌다.
22일 프리마코바 타티아나 러시안커뮤니티협회 회장(39·여)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다른 러시아인들도 아이가 학교에서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했다는 호소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피해 사례를 공유하고 있는데, 주로 피부색이나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놀리는 괴롭힘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름을 부르지 않고 ‘외국인’이라고 부르며 따돌리는 식”이라고 말했다. 따돌림이 폭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외국인 학부모’라는 이유로 무시당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초등학생인 아들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는 러시아인 B 씨는 “아이에게서 ‘따돌림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담임선생님에게 상담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국인 남편이 다시 전화를 걸어 화를 낸 뒤에야 만나서 상담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 아이는 한국말도 잘하고, 김치도 잘 먹는다”며 “겉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따돌림을 당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안커뮤니티협회 등은 26일 간담회를 갖고 피해 사례와 대응방안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9월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한국계 러시아인은 2만2781명이다. 한국계 중국인(32만5643명)과 미국인(4만3929명) 다음으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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