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무기 도입 비리와 방산비리는 다르다
▲시대착오적 원가 산정, 낮은 이윤율…
▲국내 업체엔 엄격, 해외 업체엔 관대
▲정부 규제 줄이고, 국산화·수출 늘려야
지난해 국내 방산업계는 침울했다. 업자들은 일할 맛이 안 났다. 말 많고 탈 많던 방위산업비리 수사 때문이다. 2014년 11월 출범한 민․군합동수사단은 약 7개월간 수사하며 70여 명을 기소했다. 합수단 수사내용에 대한 언론의 대대적 보도는 방산업계에 큰 타격을 입혔다. 업체들은 하루아침에 비리집단으로 낙인 찍혔다.
합수단 수사는 방산업계의 고질적, 관행적 비리구조를 파헤쳤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합수단은 모두 9800억 원대 비리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성공한 수사로 비칠 만하다. 하지만 수사의 질을 따지면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 과거 감사원 감사나 군검찰 수사를 거친 사건을 재조사해 살을 붙인 ‘재탕 수사’가 많은 데다, 몇몇 주요 사건의 경우 법정에서 무죄가 선고됐거나 향후 재판에서 수사결과를 뒤집는 판결이 나올지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육군 특수전사령부 ‘불량 방탄복’ 관련 비리로 기소된 장교 2명은 1심과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군검찰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통영함 음파탐지기 납품 비리와 관련해 구속된 황기철 전 해군 참모총장은 1심에서 무죄로 풀려난 데 이어 항소심에서도 같은 판결을 받았다. 황 전 총장은 민간인 신분이므로 검찰 관할이다. 군검찰과 마찬가지로 검찰도 상고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군검찰과 검찰이 여론을 의식해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대법원이 사실 판단이 아닌 법리 판단을 하는 곳임을 감안하면, 사실관계가 뒤집힐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기자는 지난해 6월 이 두 사건과 영국제 해상작전헬기(AW-159․와일드 캣) 도입 비리 사건을 중심으로 합수단 수사의 문제점을 제기한 바 있다(신동아 2015년 7월호 ‘몸통 놔두고 꼬리만 건드린다-방위사업비리 수사의 이면’).
작전요구성능(ROC) 미달 및 시험평가서 조작 논란에 휩싸인 와일드 캣은 최종 관문인 현지수락검사(SAT)를 통과해 조만간 도입될 예정이다. 수락검사를 통과했다는 얘기는 해군에서 요구한 성능을 다 충족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향후 재판결과가 주목된다. 불량품이 아니라면, 성능을 조작하려 허위 공문서를 작성했다는 공소사실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와일드 캣은 올해 1차분 4대, 내년에 2차분 4대, 총 8대가 도입된다.
“방산비리 아닌 개인 비리”
방산업계에서는 “‘방산비리’라는 용어부터 문제가 있다”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온다. 방산 관련 단체 관계자의 얘기다.
“합수단 수사내용 중 상당수는 방산비리라고 볼 수 없다. 해외에서 무기를 도입하는 과정에 발생한 비리와 방산비리는 구분해야 한다. 단순 군납 비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합수단과 언론에서 이를 싸잡아 방산비리라고 하는 바람에 성실하게 사업을 해온 다수 방산업체가 도매금으로 욕을 먹었다.”
실제로 언론에 크게 보도된 방산비리 중에는 해외 무기체계 도입과 관련한 비리가 많다. 군 법무관 출신 이명현 변호사(법무법인 그린)는 정옥근 전 해군 참모총장의 금품수수 사건에 대해 “방산비리라기보다는 개인 비리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에 따르면 정 총장은 해군 함정사업 수주에 나선 조선업체 STX로부터 아들 행사의 후원금 명목으로 7억여 원을 받았다. 연예인 클라라와의 관계로 더 눈길을 끈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 사건도 정 전 총장의 경우처럼 방산비리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이 변호사의 시각이다. 이 회장의 죄명은 납품 사기. 터키에서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를 도입하면서 원가를 부풀려 500여억 원의 부당 차익을 챙겼다는 혐의다.
“이 회장이 사기를 쳤다면, 방위사업청은 공모하거나 속은 셈이다. 그런데 방사청 쪽에선 누구도 기소되지 않았다. 원가의 2배 가격으로 계약했는데도 몰랐다면 심각한 배임에 해당한다. 또 장사꾼이 이문을 많이 남긴 것이 사기죄에 해당되는지도 의문이다. 법원이 어떻게 판결할지 궁금하다.”
합수단 수사로 시끄럽던 지난해 6월, 한국 방산업계에는 큰 지각변동이 있었다. ‘큰 손’ 삼성이 자사 방산기업을 한화에 매각한 것이다.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는 한화테크윈과 한화탈레스로 이름이 바뀌었다.
한화는 올해 4월 한국형전투기(KF-X)에 탑재할 능동위상배열(AESA) 레이더 개발권을 따내며 기세를 올렸다. AESA 레이더는 KF-X의 눈에 해당하는 핵심 장비로, 미국 측이 제공하는 기술이전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독자개발 능력을 두고 논란이 된 바 있다. 한화탈레스가 우선협상대상 업체로 선정되자 업계에서는 놀라움을 나타냈다.
한 달 뒤인 5월엔 한화테크윈이 대공․유도무기체계를 생산하던 두산DST를 인수함으로써 한화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방산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한화그룹의 방산을 계열사 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주)한화: 정밀탄약, 유도무기, 무인․수중체계 △한화테크윈: 자주포, 장갑차, 항공기 엔진, 드론, 기동무기, 대공․유도무기체계 △한화탈레스: 지휘통제, 감시․정찰체계, 레이더. 삼성이 포기한 이유
삼성과 한화의 거래는 물론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 하겠다. 세계적 방산기업을 꿈꾸는 한화의 행보는 국내 방산업계의 미래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그런데 한화의 ‘약진’ 못지않게 눈여겨봐야 할 것은 삼성의 ‘철수’다. 글로벌 기업 삼성이 방산에서 발을 뺀 것은 오늘날 국내 방산업계의 위기를 말해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와 관련, 지난 4월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 회장이 글로벌디펜스뉴스에 기고한 글이 SNS에서 화제가 됐다. 제목은 ‘삼성이 방위산업을 포기한 이유’. 이 글에서 채 회장은 삼성이 방위산업에서 철수한 이유에 대해 △방산비리 업체라는 오명이 견디기 힘들고 △고비용․저효율 산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민수(民需) 제품에서 평균 10% 이상의 마진율을 기록하는 삼성의 입장에서 보자면 겨우 3~5% 마진을 챙기기 위해 ‘방산비리 업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면서까지 방위산업에서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방위사업법에 따르면, 방위산업이란 ‘정부가 지정한 방산물자를 포함한 무기체계 및 주요 비무기체계를 생산(제조, 수리, 가공, 조립, 시험, 정비, 재생, 개량 또는 개조)하거나 연구개발하는 사업’이다. 방산물자를 생산하는 방산업체는 정부가 지정하는데, 현재 95개 업체가 활동한다.
유사한 개념으로 방산 관련 업체, 군납업체, 무역대리점(오퍼상) 등이 있다. 방산 관련 업체는 방산업체의 협력업체, 방산장비․물자 무역업체, 방산장비 시제업체 등 방산물자 관련 제조나 연구․개발에 참여하는 업체다. 군납업체는 피복, 식자재 등 군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납품한다. 무역대리점은 외국 수입업자 또는 수출업체의 위임을 받아 국내에서 수출물품을 구매하거나 수입계약을 체결하는 업체다.
현재 방산 관련 업체는 1만 여개, 군납업체는 수만 개, 무역대리점은 2000여 개에 이른다. ‘방산비리’를 언급할 때 방산업체의 비리와 기타 업체의 비리를 구분해 달라는 것이 방산업계의 하소연이다.
국내 방산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기관은 방위사업청이다. 방사청은 무기를 비롯한 모든 방산물자 구입에 대한 예산을 짜고 계약을 하고 집행한다. 3000억 원 이하 사업은 방사청장이, 3000억 원을 초과하는 사업은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결정한다. 방추위 위원장은 국방부 장관이고, 부위원장이 방사청장이다.
무기 도입의 경우 각 군에서 소요제기를 하면 합동참모본부, 국방부(전력자원관리실)를 거쳐 방추위 안건으로 올라간다. 최종 결정 단계에서 청와대(안보실)와 조율한다. 모든 방산물자는 공개 입찰이 원칙이다. 다만 특정 회사에서만 생산하는 물품인 경우 수의계약으로 진행한다. 방산비리 수사 이후 방사청은 감시를 강화한다며 감독관 자리를 신설했다. 민간 검찰의 부장검사급이 임명됐다. 감독관 아래 기획팀장, 법무팀장 자리도 검사가 맡았다. 해외 업체와의 차별
방산업체들의 가장 큰 고충은 불합리한 원가 산정과 적은 이윤이다. 시중 일반 제품의 원가는 시장가격으로 결정된다. 하지만 방산물자의 원가는 실발생 비용을 기준으로 삼는다. 모든 방산업체는 연말에 방산원가를 방사청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방사청은 이를 검토해 허위사실이 있을 때는 부정당 제재(부정당 업체로 지정해 불이익을 주는 것)를 하고 투입금액을 환수한다. 업체들은 원가자료 외에 회계자료, 재무제표 등 기밀자료도 제출해야 한다. 방사청에 이어 감사원이 한 번 더 점검을 한다. 게다가 국가정보원, 기무사령부 등 보안기관이 수시로 감찰한다.
이에 비해 해외 업체는 거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해외에서 구입하는 무기의 경우 원가가 얼마인지 방사청에서 알아낼 도리도 없다.
“해외 업체는 문제가 생겨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부품 공급을 중단한다든지 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 정부를 압박하기에 해외 업체로부터 무기체계를 공급받는다는 것은 향후 수십 년간 엄청나게 바가지를 쓸 각오를 해야 하는 일이다. 감사원이나 검찰이 국내 방산업체처럼 매우 엄격한 법적 절차를 들이대다가는 무기체계를 구매할 수 없게 되기에 해외업체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 회장)
방산업체의 유일한 고객은 군, 곧 국가다. 국가를 대표해 방사청이 업체와 계약을 맺어 각 군에 공급한다. 실발생 비용을 원가로 산정하는 제도는 1970년대 박정희 정부가 방산업체들을 보호하려 도입했다. 정부가 생산에 드는 모든 비용을 보전해주고 이윤까지 얹어 주겠다는 정책이었다.
이 제도는 ‘맨땅’에서 시작한 방산업계가 자리를 잡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됐다. 하지만 해외에 수출까지 할 정도로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춘 지금은 시장원리에 따라 가격을 산정하고 이윤을 내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방산원가 정책이 이를 가로막는다. 수십 년 전 업체들을 돕겠다고 도입한 제도가 지금에 와선 발목을 잡는 셈이다.
방사청 법률지원팀장을 지낸 이명현 변호사는 “사실 방산 원가라는 건 정확히 계산하기 힘들다”며 원가 산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완제품 원가를 산정할 수 없으니 각 부품 원가를 합해 계산한다. 어떻게 부품 값을 합해 제품 값을 책정할 수 있나. 상식에 어긋나는 짓이다. 방사청 원가팀이 수시로 작업현장을 찾아 점검하고 감시한다. 결국 업체는 인건비에서 남겨먹을 수밖에 없다.”
방사청이 보장하는 법적 최저 이윤율은 9%대. 실비용을 근거로 한 원가에 9%의 이윤을 얹어준다는 개념이다. 하지만 실제 이윤율은 그보다 낮다는 게 업체들의 하소연이다. 방사청이 비용을 다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해외 전시행사 운송비, 보험료, 변호사 수임료 따위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방산은 국가를 상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갑․을 관계가 명확하다”며 “업체로서는 무조건 정부 기준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체는 또 계약금액의 10%에 해당하는 이행보증금을 내야 한다. 추진과정에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이 돈은 몰수당한다. 경우에 따라 과징금도 내야 한다. 가장 논란이 큰 것은 지체상금(遲滯償金)이다. 말 그대로 계약기간 내 사업을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 지불하는 벌금 성격의 돈이다. 해외 업체의 경우 그 한도가 계약금액의 10%다. 하지만 국내 업체의 경우 한도가 없다. 하루 지체하면 계약금액의 0.15%를 벌금으로 물린다. 1년이면 54%에 달한다(0.15x365=54).
이명현 변호사는 “지체상금 비율이 높은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해외 업체와 차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부러 사업 진행을 늦추는 기업은 없다. 지체하는 만큼 기업도 손해를 입기 때문이다. 해외 업체의 지체상금 한도가 10%면 국내 업체에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 이건 일종의 갑질이다. 해외 업체에 대해선 갑질을 못하니까.” 국내 개발을 해외 구매로
한국방위산업진흥회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국내 방산 매출액은 11조9883억 원. 이 중 92.8%인 11조1370억 원이 상위 10개사의 매출이다. 영업이익은 매출액의 5%에 못 미치는 5352억 원이었다.
방위산업은 위험도(리스크)가 높고 막대한 설비 투자가 필요한 자본집약적 산업이다. 자금 회수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 연구개발이 반드시 전력화로 연결된다는 보장도 없다. 일반 제품을 생산할 때보다 실패 확률도 높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갈수록 무기체계의 수명이 단축되기 때문에 효용성도 떨어진다. 민수시설로 전환하는 데도 제약이 많다. 그밖에 △수요를 예측하는 것이 힘들고 △국방부의 예산 편성 및 집행이 불규칙적이고 △성능 개량을 하지 않아 기술력을 쌓을 기회가 적다는 점도 불리한 요소다.
“국방부는 국방중기계획에 따라 무기체계 조달을 실시하지만, 갑자기 북한의 잠수함 위협이 강조되면 정부의 추가 예산을 확보하여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진행 중인 다른 사업의 예산을 줄여 대잠수합 사업에 투입하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하기에 삼성처럼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철저하게 스케줄 및 자금관리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미래 계획을 잡을 수가 없는 점도 방위산업을 포기하게 된 배경 중 하나일 것이다.”(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 회장)
즉흥적이고 불규칙적인 국방부의 무기 도입 계획은 종종 방산업체를 맥 빠지게 만든다. 군사평론가 김종대 국회의원 당선자(정의당)는 “안보위기가 돈벌이로 이용된다”라고 꼬집었다. “북한이 도발하면 안보위기를 내세워 원래 중기계획에 없던 사업을 갑자기 추진하거나 기존 사업을 변경한다.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국내 연구개발을 포기하고 값싸고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해외 무기를 들여오자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그러면 국내 개발이 해외 직구매로 바뀐다.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 해군 해상작전헬기, 육군 공격형 헬기 등이 대표적 사례다. 그 과정에 로비스트가 개입해 부정이 싹튼다. 이명박 정부 때 유난히 방산비리가 많았던 것은 이처럼 원칙 없이 국내 개발을 해외 구입으로 바꾼 탓이다.”
이명박 정부가 리베이트 관행을 없앤다며 전력증강사업 예산을 일률적으로 20% 이상씩 삭감한 점도 비리의 싹을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싼 가격에 맞추려다 보니 부실한 무기를 들여오거나 성능을 조작하려 허위 공문서를 꾸미게 됐다는 것이다. 통영함 음파탐지기 납품 비리가 그런 경우다. 김 당선자는 “군의 탐욕과 청와대의 비전문성이 맞물려 국방 예산 관리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국내 방산업체를 죽였다”고 비판했다.
“예산을 무조건 깎아 버리면 부실한 장비가 들어올 수밖에 없다. 국내 개발의 경우 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 재료비, 노무비를 겨우 건질 정도다. 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업체로서는 손해를 감수하면서 납품하는 것이다. 잘못된 소요에 비용마저 깎아버리니 국내 방산업체가 죽어나는 것이다.” 지속적 업그레이드 필요
국내 방산업 발전에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무기체계의 업그레이드다. 한 번 공급한 무기체계는 보통 수십 년간 사용된다. 지속적이고 정기적인 성능 개량 사업을 통해 수명주기를 연장하면 군도 좋고 업체도 좋다. 그런데 군에선 새로운 무기 도입에만 신경 쓰고 기존 무기 관리에 소홀한 편이다. 유사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성능이 떨어지는 장비가 종종 출현하는 이유다. 그러면 방산비리라며 업체에 책임을 떠넘긴다.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으면 업체는 기술력을 쌓을 기회를 잃고 생산라인을 유지하기도 힘들다. 방산이 위태로워지면 안보가 흔들린다. 결국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올해 국방예산은 약 38조8000억 원. 지난해 대비 3.6% 증가한 금액으로, 정부 전체 예산의 14.5%를 차지한다. 국방예산은 전력운영비(전력유지비+병력운영비)와 방위력개선비로 나뉜다. 방산업체의 매출과 직결되는 방위력개선비는 국방예산의 30%인 11조6400억 원이다. 이 중 9조 원가량이 무기를 비롯한 각종 방산물자 도입에 쓰이고, 나머지는 연구개발비로 집행된다. 9조 원 중 6조 원은 국산 장비, 3조 원은 해외 장비 도입 비용으로 쓰일 예정이다. 6조 원을 놓고 올해 국내 95개 방산업체가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 자료에 따르면, 2015년 방산물자 국산화율은 65.8%. 가격을 기준으로 계산한 수치다. 국내 기술 기반이 탄탄한 탄약과 통신전자 분야는 높은 반면, 주요 핵심 부품을 해외 구매에 의존하는 항공, 함정 분야는 낮다. 특히 항공의 경우 국산화율이 40%에도 못 미친다.
무기 국산화는 종종 논란을 일으킨다. 외제 무기, 특히 미국산 무기에 대한 맹신과 국산 무기에 대한 불신 탓이다. 많은 무기를 수입하다 보니 부품 의존성이 높아지고 기술 종속성이 심화된다. 이명현 변호사는 “효용성 논란이 있지만, 거시적으로 봐서 국산화가 옳다”고 말했다. “기술력 차이가 분명히 있다. 인프라도 약하다. 하지만 핵심기술이 문제라면 그것만 사오면 된다. 해외 구매가 당장은 싸게 먹히지만 길게 보면 돈이 더 들어간다. 후속 부품 값과 수리 비용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만들면 부품 값도 싸게 먹히고 정비나 수리도 편리하다. 더 중요한 건 국내 고용 창출이다.”
방산 관련 단체 관계자는 “(국내) 연구개발에 대한 마녀사냥 식 비판과 과도한 ROC가 문제”라고 말했다.
“논란이 된 K-2 전차 파워팩 문제만 해도 애초 엔진과 변속기를 따로 계약한다는 결정 자체는 합리적이었다. 그런데 국산 파워팩에서 결함이 발견되자 마치 결정 과정에 비리가 있었던 것처럼 몰아갔다. 이런 식의 마녀사냥이 자꾸 국산화를 늦춘다.”
현재 군에 배치된 K-2 흑표전차 100대의 파워팩은 독일제다. 하지만 추가로 배치할 200대에는 성능을 보완한 국산 파워팩이 장착될 예정이다. 흑표전차는 현대로템에서 생산한다. 파워팩 중 엔진은 한화가 인수한 두산DST에서, 변속기는 S&T중공업에서 제작한다. 잠수함 한 대는 중형자동차 1만8600대
방산은 수요자가 한정돼 있기에 태생적으로 시장성이 떨어진다. 민수로 연결하면 1석2조인데 갖가지 규제와 통제로 쉽지 않다. 따라서 해외시장 개척, 곧 수출이 살 길이다. 다행히 2006년 이후 수출량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2014년엔 역대 최고인 36억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수출금액은 1억달러가 감소한 35억달러. 수출 대상 국가는 2006년 47개국에서 2014년 124개국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수출업체 수는 47개에서 124개로 증가했다.
품목도 다양해졌다. 초기엔 탄약류와 정비 부품이 주류였는데, 기동장비에 이어 지금은 함정․항공기 등 대형 무기까지 수출한다. 대표 상품으로 T-50 고등훈련기, KT-1 훈련기, K-9 자주포, K-2 전차, 209급 잠수함 등을 꼽을 수 있다. T-50 한 대 파는 효과는 2000만 원짜리 중형자동차 1150대 파는 것과 같다. 209급 잠수함 한 대 수출은 같은 급 자동차 1만8600대와 맞먹는다.
외국에선 그 나라 최고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방산업을 주도한다. 그만큼 첨단 기술이 들어가고 고도의 정밀성, 신뢰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방산업계는 삼성의 철수를 우려하면서도 한화의 과감한 투자를 반기는 분위기다. 우리나라에도 드디어 록히드마틴이나 보잉과 같은 대형 글로벌 방산업체가 탄생하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기대감도 엿보인다.
한화의 몸집 불리기가 국내 방산업계에 미칠 영향을 속단할 순 없다. 다만 자사 방산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 그치지 않고 국내 방산업의 국제적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일조한다면 부정적 영향보다 긍정적 영향이 훨씬 크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온다.
▶<인터뷰>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 회장
“실패하더라도 우리 손으로 제작해야”
5월 초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국방위산업학회 사무실에서 채우석 회장을 만나 2시간 가까이 얘기를 나눴다. 육사 28기인 채 회장은 2001년 준장으로 예편했다. 군 재직 중 국방부 획득기획과장, 연구개발관, 조달본부 외자과장 등 방산 관련 업무를 맡았다.
-요즘 방산업계가 많이 힘들다고 들었다.
“일반 기업과 달리 정부의 간섭과 규제가 심하다. 또 방산비리를 수사한다며 대다수 성실한 업체까지 도매금으로 매도하니 견디기 힘든 것이다. 삼성이 발을 뺀 데는 그런 이유도 있다.”
-이윤율이 낮다고 하는데.
“정부의 비용 정산 개념이 문제다. 아직도 정부가 생산비용을 보전해준다는 40년 전 패러다임으로 원가를 산정한다. 법적으로 9%를 보장한다지만 실제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비용이 많아 이윤이 4~5%인 경우가 많다. 비용 보전에 따른 원가 산정은 예전엔 당근이었지만 지금은 채찍일 뿐이다. 가격이라는 건 협상과 경쟁 속에, 그리고 시장 상황에 따라 결정돼야 맞다. 하루빨리 이런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
-방산비리 수사에 어떤 문제점이 있었나.
“병을 근원적으로 치료하는 수사가 아니라 또 다른 병을 잉태하는 수사였다. 진짜 우리 방산을 위하고 국가 안보를 걱정해 벌인 수사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띤 수사였다. 칼잡이들의 입맛에 좌우되면서 재수 없는 기업만 걸렸다는 느낌을 줬다.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대통령이 컨트롤타워로서 부처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군의 잘못된 시스템을 고쳐나가면서 일벌백계해야 한다. 방산을 육성한 박정희 대통령은 그런 식으로 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개념과 접근방식이 다른 것 같다. 방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검찰이 마구잡이로 수사하니 법원에서 자주 무죄판결이 나오는 것이다.”
채 회장은 “방사청의 부적절한 인사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방산비리를 근절한다며 잠수함 사업팀장에 공군 대령 출신을 앉혔다. 해군이 맡으면 선후배끼리 해먹는다며. 이게 말이 되나. 차라리 아무런 관계없는 민간인을 앉히지.”
방사청 대변인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청렴성 강화 대책으로 그런 인사를 한 게 사실”이라며 “사업관리역량과 업무절차 등 행정의 투명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연구개발은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
“명분은 세우기 나름이다. 자꾸 국산화를 늦추면 기술력이 향상될 수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무기 국산화를 적극 추진했다. 하지만 1980년대 신군부가 들어선 후 해외 직구매나 기술도입생산을 선호했다. 정치자금 확보와도 관련된 일이었다. 또 국내 개발의 경우엔 충분한 돈을 주지 않았다. 개발비가 모자라는 상태에서 생산하다 보니 일선 배치 후 성능의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개발비가 모자라면 기업은 경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시험 횟수를 줄이거나 싼 부품을 쓰는 것이다.”
장비 결함이 발견되면 감사와 수사가 벌어진다. 기업은 기업대로 불만이고, 군은 군대로 불만이다. 국산 무기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진다. 그러면 또 해외 무기 찬가를 불러댄다. 악순환인 셈이다.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국산화를 반대하기도 한다.
“관점의 차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자체 기술력 확보와 후속 군수지원 면에서 설사 실패를 하더라도 우리 손으로 제작하는 게 맞다. 공군 TA-50(훈련기), FA-50(다목적 전투기) 개발할 때도 얼마나 논란이 많았나. 한다, 못 한다, 사와야 한다… 이런 소모적 논쟁으로 10여 년을 허비했다. 결국 개발에 성공해 지금은 수출도 하지 않나. 육군 기동헬기 수리온도 마찬가지다.”
-군에서 해외 무기를 선호하는 경향도 있지 않나. 성능 면에서.
“예전엔 공군 파일럿들이 ‘국산 전투기는 죽어도 못 탄다’고 했다. 요즘엔 달라졌다. 우리 기술력이 그만큼 향상됐기 때문이다. 미국 제품을 쓰는 것이 불편하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장비를 구동할 수가 없다. 제때 부품 구하기도 힘들고 정비도 국내에서 못한다. 그래서 공군도 KF-X 사업에 적극 찬성하게 된 것이다.”
채 회장은 국방부 연구개발 과장 시절 공군의 반대를 뚫고 장관을 설득해 중앙방공통제소(MCRC) 사업을 국내 개발로 밀어붙여 성공했던 일화를 들려줬다.
“정 힘들면 핵심 기술만 사오면 된다. 일단 국내 기술로 개발해놓으면 나중에 보완이나 업그레이드를 쉽게 할 수 있다.”
-KF-X 사업의 경우 미국이 4대 핵심 기술을 넘겨줄 수 없다고 해 논란이 일었다. 국내에선 기술도 부족하고 나중에 시장성도 없을 테니 해외 구매가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있다.
“우리가 넘을 산이 있다면 우리가 넘어야 한다. 남보고 자꾸 넘어 달라고 하면 우리는 끝내 못 넘는다. 최근 한화탈레스가 LIG넥스윈을 제치고 AESA 레이더((KF-X 핵심 장비) 우선협상대상 업체로 선정된 것을 두고 논란이 일었는데, 어느 회사가 됐든 기술력을 발휘해 우리 것으로 잘 만들면 된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어느 정도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계속 업그레이드 해 발전시켜나가면 된다.”
-국내 방산업 발전을 위해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정부의 간섭, 통제를 줄이고, 기업 자율형으로 바꿔야 한다. 정부는 수출을 잘할 수 있도록 외교적․정치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업체도 자구책을 강구해 생존력을 갖춰야 한다. 아픔을 딛고 새롭게 탄생해야 한다.” ▶<글로벌 방산기업 꿈꾸는 한화> 40년 방산 노하우, 세계 10위권 목표
한화그룹 방산의 모태는 (주)한화다. 1974년 방위산업체 대열에 합류한 한화는 2002년 대지유도무기 전문화 업체로 지정됐다. 한화가 개발해 지난해 전력화된 230㎜ 다련장 천무는 기존 지상화력무기보다 월등한 사거리와 정밀도를 갖춰 북한 장사정포에 대응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화는 지난해 말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의 핵심인 장거리 지대공 유도무기(L-SAM)의 유도탄 개발 사업권을 획득했다. ‘한국형 사드’라고 불리는 이 유도탄은 고도 40㎞ 이상의 상층 방어용이다. L-SAM의 레이더는 한화탈레스가 개발한다. 한화는 지난해 소형 무장헬기에 장착할 공대지 유도탄 개발 사업권도 획득했다.
한화탈레스는 그간 대형 상륙함, 유도탄 고속함, 차기 호위함 전투체계의 국내 연구개발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왔다. 현재 차기 잠수함과 차기 호위함, 차기 고속정 전투체계를 개발 중이다. 지난 1월엔 방사청과 5조 원대 국방정보화 사업인 전술정보통신체계(TICN)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한화탈레스의 주력 제품으로 레이더를 빼놓을 수 없다. 단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천마의 레이더를 생산하고,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천궁의 3차원 다기능 레이더 개발에 참여했다. 이 기술을 기반으로 장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L-SAM의 다기능 레이더 사업을 수주했다.
한화테크윈의 뿌리는 1977년 설립한 삼성정밀공업이다. 삼성정밀은 이후 삼성항공산업-삼성테크윈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83년 지상전투장비 사업에 진출한 이래 30여 년간 육군 전투력 증강에 이바지했다. K-55, K-9 자주포와 포병사격 지휘장갑차, 전투공병차량, 해병대 상륙용 장갑차 등을 개발해왔다. 국산 명품 무기로 꼽히는 K-9은 2001년 터키에 수출된 데 이어 지난해 폴란드와도 수출계약을 맺어 유럽 방산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평을 듣는다.
한화테크윈은 또한 전투기 및 헬기 엔진 제작을 도맡아온 국내 유일 가스터빈 엔진 제작 기업이다. F-5 제공호 엔진 생산기술을 바탕으로 1986년 KF-16 전투기의 최종 조립업체로 선정된 바 있다. 2004년엔 F-15K 국산화 엔진 1호기를 생산하기도 했다. 최근엔 민수사업 기술과 방위산업 기술을 접목해 고성능 드론을 개발했다. 최근 두산DST 인수로 기동․대공무기체계 및 항법장치로까지 영역이 확대됐다.
한화는 두산DST 인수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 국내 최고 방산기업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 10위권 방산업체로 도약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 신현우 한화테크윈 대표는 “두산DST 인수는 글로벌 방산업체로 도약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의 일환”이라며 “해외시장 개척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 회장은 한화의 방산 집중화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삼성이 빠진 상황에서, 한화의 적극적인 참여를 매우 높게 평가한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수출에 역점을 두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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