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방위산업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비리를 수사 중인 검찰이 KAI 임원 박모 씨(58)에 대해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14일 법원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앞서 8일 국가정보원의 민간인 댓글부대 ‘사이버 외곽팀’ 관련자 구속영장과 유력 인사들의 청탁을 받고 채용비리를 저지른 KAI 임원의 구속영장이 기각됐을 때 거친 설전을 벌였던 법원과 검찰이 불과 엿새 만에 다시 충돌한 것이다.
강부영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43·사법연수원 32기)는 13일 오후 11시경 KAI의 고정익 개발사업 관리실장(상무)인 박 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증거인멸죄가 성립하려면 타인의 형사사건 증거를 인멸해야 한다. (박 씨에게) 증거인멸 지시를 받은 A 씨가 본인의 혐의 관련 증거를 인멸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분식회계에 연루된 혐의 등을 받고 있는 박 씨는 같은 부서 소속인 부하 직원 A 씨에게 회사 문서 파쇄를 지시했다. 검찰은 박 씨의 행동을 증거인멸을 지시한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법원은 A 씨가 한 일이 박 씨가 아닌, A 씨 본인의 범죄 증거를 없앤 것으로 볼 측면이 있어서 증거인멸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약 한 시간 뒤인 14일 0시 12분경 출입기자들에게 500자 분량의 문자메시지를 보내 영장 기각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검찰은 “수긍하기 어렵다. 이 사건에서 인멸된 증거는 경영진과 회계담당자의 분식회계에 대한 것”이라며 “박 씨는 회계부서와 직접 관련이 없는 개발부서 실무자들(A 씨 등)에게 직무상 상하관계를 악용해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된 중요 증거를 세절하도록 시켰다”고 반박했다. 법원이 밝힌 영장기각 사유는 사실관계와 법리 면에서 옳지 않다는 것이다.
검찰의 격한 반응과 달리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공식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법원 내부에서는 “검찰의 언론플레이가 금도를 넘어섰다”며 불쾌해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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