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용 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표(66)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인식 KAI 부사장(65)이 21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찰 안팎에서는 김 부사장의 죽음이 KAI 경영비리 수사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그러나 검찰은 “김 부사장은 조사나 소환 대상이 아니었다”며 선을 그었다.
○ “잘해 보려고 했는데…” 유서 남겨
김 부사장은 이날 오전 7시경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던 경남 사천시 회사 사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KAI 직원은 김 부사장이 평소와 달리 일찍 출근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자 사택을 찾아갔다가 숨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김 부사장의 아파트 거실에는 소주와 맥주를 마신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거실에서 A4 용지 3장 분량 유서가 발견됐다. 김 부사장은 하 전 대표 등 회사 관계자 앞으로 “잘해 보려고 열심히 했는데 사장님과 회사분들에게 고통을 드렸다. 송구스럽다”고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와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고 한다. 경찰은 타살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이날 시신을 유족에게 인도했다. 빈소는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에 차려졌다.
김 부사장은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공군 조종사 출신이다. 합참의장 보좌관을 지냈으며 공군에서 주로 항공사업 분야 업무를 담당했다. 2006년 KAI에 입사해 고등훈련기 T-50과 국산 헬기 수리온 수출, 차세대 미국 고등훈련기(APT) 교체 사업 등 해외업무를 총괄했다.
KAI에 따르면 김 부사장은 검찰 수사가 시작된 후에도 밀린 T-50 IQ 경공격기 수출대금을 받기 위해 17일 이라크를 방문했다가 별다른 소득 없이 20일 오후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KAI 관계자는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이 회사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 데다 검찰 수사가 고교 동기인 하 전 대표에게로 향하자 핵심 임원으로서 큰 부담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 검찰 “김 부사장 조사 대상 아냐”
21일 오전 김 부사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직후 KAI 경영비리 전반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은 “KAI 수사와 관련해 김 부사장을 조사하거나 소환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김 부사장이 자살한 이유가 검찰 수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 안팎에서는 김 부사장이 하 전 대표의 최측근이며 회사 경영 곳곳에 관여했던 점을 감안할 때 향후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검찰은 추석 연휴 이전에 하 전 대표의 개인비리 수사를 마무리한 뒤 KAI의 해외사업 관련 의혹과 정치권 로비 의혹 등으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었다. KAI의 사실상 2인자로, 굵직한 해외 수출 프로젝트를 주도해온 김 부사장을 조사할 수 없게 된 건 검찰로서는 뼈아픈 일일 수밖에 없다.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부장 이용일)는 이날 하 전 대표에 대해 KAI의 재무제표를 허위로 작성한 혐의(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전날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판사(43·사법연수원 32기)는 KAI 채용 비리에 개입한 혐의로 청구된 이모 KAI 경영지원본부장의 구속영장을 재차 기각했다. 이 본부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앞서 8일에도 한 차례 기각됐었다.
강 판사는 “범죄사실 내용과 제출된 증거 자료 등에 비춰볼 때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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