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대한항공 경영관리 개선” 공개 압박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6일 03시 00분


지분 12.45% 보유한 2대주주, “오너일가 일탈… 수익성 저해 위험”
경영진과 비공개 면담도 요구… 재계 “기업경영 위축” 우려 목소리

국민연금이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갑질 논란을 계기로 대한항공에 대한 압박을 본격화하면서 ‘연금 사회주의’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에 경영관리체계 개선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뒤 경영진과의 비공개 면담을 요청했다. 국민연금이 개별 기업에 공개서한을 보내거나 경영진 면담을 추진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정부가 600조 원을 넘어선 국민의 노후자금을 앞세워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는 5일 “최근 언론에 계속 보도되고 있는 대한항공과 한진칼 등 한진그룹 경영진 일가의 일탈행위 의혹이 기업 평판 악화 등으로 이어지면서 국민연금의 장기 수익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한진그룹 측에 경영관리체계 개선 등을 포함해 효과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대한항공에 경영진과 사외이사와의 비공개 면담을 요청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의 지분 12.45%를 보유한 2대 주주다.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2대 주주(11.81%)이기도 하다.

의결권 전문위는 경영권 개입 논란을 의식한 듯 “이번 입장 표명이 자본시장법상 경영권 간섭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번 결정이 기업 실적보다는 여론의 움직임을 고려해 내려진 것이라는 점에서 재계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앞으로 국민의 비난을 받는 기업이 생길 때마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압박하면 기업 경영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기업들은 정부의 눈치를 더욱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이 큰 지분을 쥐고 있는 기업들은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민연금은 3월 말 기준 국내 주식시장에 약 131조 원을 투자하고 있다.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국내 기업은 276곳에 이른다. 국민연금은 지분이 높을수록 기업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다. 기업들은 ‘큰손’인 국민연금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민연금은 다음 달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예정이어서 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입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가가 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한 의결권 행사 지침이다. 국민연금은 주주 가치를 소홀히 하는 기업을 ‘중점관리 기업명단’에 포함시키고, 주주 제안을 통해 임원 후보를 추천하거나 주주대표소송 등을 제기하는 적극적인 주주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나 재벌 개혁 등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추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한 뒤 일관된 기준을 갖고 진행돼야 한다”며 “이 같은 결정이 장기적인 주가 상승에 도움이 되는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국민연금#대한항공 경영관리 개선#공개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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