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영장이 청구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대한항공 내부에서는 경영 위기 현실화 우려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사건’으로 시작된 수사가 조 회장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자칫 총수 공백 사태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내부에서는 조 회장과 총수 일가의 잘못이 있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대한항공 노조와 다수 직원은 보여주기식 수사나 여론의 눈치를 보는 수사는 지양해 줄 것을 요구해왔다. 지난달 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대한항공을 살리는 수사를 해달라’는 글이 올라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회사 측은 총수 부재로 인한 경영상의 공백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내년 창립 50주년을 앞두고 지난해 새 항공기 11대를 도입했다. 올해도 신규 항공기 16대를 순차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대한항공이 현재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B777 항공기 한 대 값이 약 3300억 원 수준인 것에 비춰 보면 상당한 액수가 투자된 셈이다. 대한항공 항공기 평균 연식(9.1년)이 해외 유명 항공사인 델타항공(16.5년)과 에어프랑스(12.9년) 등에 비해 짧은 것도 신규 항공기 덕분이다. 대한항공은 내년에도 약 2조 원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데 총수 부재로 투자 시기를 놓치진 않을까 애태우고 있다.
특히 대한항공은 내년 6월 열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 총회의 주관사로 지난달 초 선정됐다. IATA 연차 총회는 세계 주요 항공사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업계 관계자 1000여 명이 모여 항공 정책과 국제선 운임 등을 결정하는 ‘항공업계의 유엔’으로 통하는 행사다. 조 회장은 IATA CEO 중 11명만 선정되는 전략정책위원회 위원으로, 인천공항이 세계 항공·물류의 허브라는 점을 강조할 예정이다.
조 회장이 만약 구속되면 총회 개최가 차질을 빚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 항공업계가 발전할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총수 일가가 밉더라도 조 회장이 한국 항공업계에 기여한 공은 인정해야 한다”며 “IATA에서 조 회장이 한국을 대표해 목소리를 크게 내줬으면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총수 일가 논란은 대한항공 경영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올해 초 대한항공은 델타항공과 조인트벤처를 맺으며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조인트벤처 이후 양 사 CEO가 한자리에서 만난 적은 없다. 4월 말 진행할 예정이던 조인트벤처 기자회견도 취소됐다. 사내에서도 워크숍 등 크고 작은 행사들을 취소하거나 미루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수사와 처벌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10차례가 넘는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이 이뤄진 만큼 증거 인멸 가능성이 없고 도주 가능성도 없으니 불구속 수사만 해도 좋겠다”고 심경을 말했다. 나중에 벌을 받게 되더라도 일단 국익을 위해 챙길 것은 챙길 시간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4일 열리기로 했던 조 회장의 영장실질심사는 조 회장 측의 기일 변경 요청으로 하루 미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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